[경일포럼] 의사님들, 환자의 손을 잡으소서
[경일포럼] 의사님들, 환자의 손을 잡으소서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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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1991년 전국국립사범대 학생과 교수들이 들고일어난 적이 있다. 1953년부터 국공립사범대 졸업자의 의무발령이었던 것이 위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공개경쟁인 이른바 임용고시를 치르게 됐다. 국가에서 사도장학금까지 지원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사도정신을 가진 교사들을 선발해 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전국 최고의 인재들이 국공립 사범대학을 지원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임용고사를 치르게 되면서 그들의 꿈은 사라졌다. 교수들과 사범대 학생들이 길거리에 나섰지만 정부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09년 3월 1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시행됐다. 전국 변호사와 법조계에서 또 들고 일어났다. 법조인들이 마구 쏟아지면 질낮은 변호사로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반대했지만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로스쿨 제도는 지금도 정부의 정책대로 시행되어 해마다 1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하고 있다. 교사도 판사, 검사, 변호사도 모두 전문직이다. 이들은 한 때 모두 기득권을 잃는 과정을 겪었다.

지금 이 나라는 의사들이 자칫 그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보여지는 단체 행동으로 죽어가는 환자 곁을 떠나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고도의 전문직이다. 다른 전문직과는 다르다. 긴 시간 동안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최고의 전문직이다. 따라서 그만큼의 대우와 처우를 받고 사회에서 극진히 존경받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여 우주와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을 구하는 일에선 그 어떤 것도 가로막아서는 안 되며 막을 수도 없다. 따라서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귀중한 생명을 담보로 그들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자식이 사경을 헤매고 고통받으며 몸부림치는데 어떻게 그냥 외면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이 아파 병석에서 뒹굴고 있는데 어떻게 내몰라라 눈을 감고 있을 수 있는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사명감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의사들도 많다. 그래도 지금 이 시대에 최고의 연봉을 받고 최상위 삶을 사는 이들이 바로 의사가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왜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의과대학에 가려고 하며 부모들은 왜 초등학생 때부터 말도 안 되는 의·치·약 준비반에 자식들을 보내 의사로 만들려고 난리이겠는가. 한 집안에 의사가 한 사람 나오기라고도 하면 온 동네 자랑하고 잔치를 하지 않는가.

의사는 醫師다. 스승이다. 의사는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수준높은 기능적인 재능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진정한 인간애가 앞서야 한다. 병든자의 나약하고 애처로운 눈빛을 감싸고 보듬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럴 것 같지 않으면 처음부터 의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환자를 앞에 두고 눈 앞에 돈이 어른거리면 그때부터 의사는 가련한 세속적인 직업인으로 떨어지면서 존경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교사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이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결코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은 조금 부족하지만 사명감과 인간애, 봉사정신이 투철한 의사가 더 훌륭한 의사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醫術)을 넘어서 사람을 다스리는 인술(仁術)이어야 한다.

나는 대학에 있으면서 교수가 되겠다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십수 년 넘게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쓰면서 온갖 고생을 다해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되기 위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사십 넘어 겨우 교수가 되어 대기업 연봉에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교수라는 존경과 학문을 사랑하고 가르친다는 보람과 사명감 하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나도 언제 병에 걸려 의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살려달라고 애원할지 모른다. 세상에 그 누구도 죽음 앞에 강한 자가 없다. 그러나 설령 세상을 떠날 때 떠나더라도 참된 의사, 진정으로 같이 눈물 흘릴 수 있는 의사 앞에서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나의 가까운 친척이 지금도 2주마다 울산에서 그 먼 서울 병원으로 힘들게 올라가 항암 주사를 맞고 온다. 어제는 6시간이나 기다려 주사를 몸에 달고 왔다고 한다.

하루빨리 의사들은 아파 고통받고 있는 부모형제 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의사가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의사는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부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지는 않길 바라고 정부에서도 시기가 시기인만큼 정치적 의도가 깔린 정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서로 머리를 맞대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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