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촌은(村隱) 이야기
[경일칼럼]촌은(村隱)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4.03.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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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올해 총선도 배꽃이 피고 지는 4월 중순에 치르게 됐다. 봄꽃이 하동, 문산 국도변을 새하얗게 뒤덮을 즈음엔 투표 결과도 드러나 있을 것이다. 올봄 우리 산하를 물들일 꽃들은 과연 어떤 정치 바람을 타고 피어날지 자못 궁금하다.

배꽃이 필 때면 으레 읊조리게 되는 시가 있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으로 시작하는 매창의 시조다. 부안 기생 매창이 촌은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을 그리워하며 지은 작품이다. 이 시조에서 매창의 ‘님’으로 등장하는 유희경은 매창의 연인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지만, 반상의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천민으로 태어나서 정2품의 지위에 오른 역대급 신분 상승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매창과의 사랑 이야기를 훌쩍 뛰어넘는, 돌올(突兀, 두드러지게 빼어난)한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허균이 매창의 인품과 시재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허균은 ‘성수시화’(1611)에서 유희경을 극찬하며, 비록 천례(賤隷)지만 사람됨이 청수하고 시에 능하다고 평했다.

천례란 ‘천한 노예’를 일컫는다. 허균의 말처럼 유희경은 천출이었으나, 13세에 부친을 잃고 홀로 흙을 뒤집어쓰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고, 양명학자 남언경이 거두어 주희의 ‘가례(家禮)’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 결과 성리학적 상제(喪制)에 통달하여 위로는 왕실에서 아래로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관여치 않은 상례(喪禮)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시풍이 맑고 고아하여 사대부 중 그의 시세계를 흠모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경복궁 서쪽 인왕산 일대에서 중인층과 서리, 서얼을 중심으로 등장한 위항문학인의 모임인 ‘풍월향도’를 주도했고, 스승인 남언경을 도와 도봉서원을 창건했으며, 창덕궁 서쪽 골짜기에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그득한 ‘침류정’이라는 누대를 짓고 이수광, 신흠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 교류했다. 후일 그의 집은 창덕궁 경내로 편입됐는데, 정조가 궁내의 늙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유희경이 심은 것이라고 회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정조실록 20년 9월 23일)

충의와 절개로도 사대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왜군 토벌에 앞장선 공을 인정받아 면천됐고, 인조반정 전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처신으로 자선대부의 작위를, 사후에는 자헌대부와 한성부판윤에까지 추증됐다. 이이첨 등이 인목대비 폐모 상소를 요구하며 그를 여러 달 가두었지만 따르지 않았고, “소인에게는 어머님이 계십니다”라는 말로 그들과 절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류에 편승치 않고 예와 품위를 지킴으로써 사대부 중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하니, 봄철 무수한 꽃잎처럼 이리저리 부산하게 흩날리는 최근의 정치 세태와 견주어 비교되는 모습이다. 매창이 그를 흠모했던 데는 아마 이런 이유도 컸으리라.

조선시대에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당색을 바꾸고, 정적을 고변하거나 사화를 일으키고, 참혹한 고문으로 정국을 위태롭게 만드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랬기에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이르는 정치적 격변기 조선에서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이 보여줬던 품위와 절개가 당대의 사대부들에게도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 됐다. 유희경의 이런 모습을 현대의 정치인들에게서 바라는 것은 무리인 걸까. 허균이 극찬했던 시구절처럼 ‘댓잎에 흐르는 아침이슬처럼, 솔가지 끝에 매달린 새벽별 같은(竹葉朝傾露 松梢曉掛星)’ 세상은 그의 시 속에서나 가능한 정경일까.

남해 용문사에 유희경의 문집인 ‘촌은집’ 목판이 소장돼 있다. 총 244수의 시 속에는 매창에 대한 그리움과 연정을 노래한 시 7편도 포함돼 있다. 배꽃이 구름처럼 만발해지면 매창처럼 촌은 같은 이를 그리는 시 한 편 지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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