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고독과 침묵에 대한 교육적 단상
[경일춘추]고독과 침묵에 대한 교육적 단상
  • 경남일보
  • 승인 2024.03.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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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정재요 진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여러 인문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처럼, 기술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삶에서 여백을 잘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듣거나 움직여야만 하고, 전자기기로 소통하며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홀로 가만히 앉아서 5분 이상을 침묵하며 고독을 연출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존경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삶의 여백을 잘 허용하지 않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도 스스로를 성찰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로운 자’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에 기대어, 필자는 우리 학생들이 무엇보다도 ‘고독과 침묵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소통 교육과 아울러 고독과 침묵에 대한 가치 교육의 병행은, 깊이 있는 사유와 행동을 유발하는 중요한 동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독과 침묵을 가르치기에는 오늘의 여건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야 하고, 유튜브 영상을 시청해야 하며, 소셜 미디어를 경유하여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양한 학원까지 다녀야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학생들이 자발적인 형태로 고독과 침묵을 5분 이상 연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요즈음 학교 현장에서 유행하는 ‘미래형 교육’이라는 것도 그 본질은 최첨단 과학기술과 접맥된 전자기기와 학생들이 공명(共鳴)하는 수준에서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형 기법이 적용된 학교의 스마트 교육이 펼쳐지면 펼쳐질수록 고독과 침묵을 동반한 삶의 여백에 대해서는 점점 더 배워나가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장석주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대추 한 알’이 붉고 둥글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태풍·천둥·벼락과 함께한 고독과 침묵의 나날이 있었는지를, 그래서 학생들에게 고독과 침묵은 의외로 힘이 세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잠시도 사람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현대사회 속에서 고독과 침묵이 지닌 가치를 학생들에게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지난한 일이기에 필자 역시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고독과 침묵을 마주하면서 내적 자아를 발견하고 내면의 스승이 건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유능한 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미국의 존경받는 교육 지도자인 파커 J. 파머가 그의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통해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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