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고문헌 현장 14] 가야시대, 문자와 기록 도구의 출현
[경남의 고문헌 현장 14] 가야시대, 문자와 기록 도구의 출현
  • 경남일보
  • 승인 2024.02.2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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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사람들 문자와 기록도구를 사용하다
청동기 시대에는 문자도 없었고, 기록의 도구도 발달하지 않았다.

이 시기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소원을 바위에 그림으로 새겼다. 이것을 암각화 또는 바위그림이라고 한다. 함안 말이산 고분에서 출토된 고인돌과 동촌리 고인돌, 하동 옥종 법대리 고인돌을 살펴보면 바위에 동심원이나 구멍을 파서 해나 별 등을 기록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야시대 사람들의 기록문화는 어떠했을까? 그들의 기록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창원 다호리 유적,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유물, 함안 성산산성 유적을 차례로 둘러보고, 가야시대에서 신라시대로 이어지는 경남의 문자기록 역사를 정리해 본다.

◇창원 다호리 유적 출토 붓과 삭도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북창원 요금소를 빠져나왔다. 내비게이션에 주남저수지를 입력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25분쯤 달리니 ‘다호리 고분군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마을 입구에 보인다. 안내판 아래에 주차하고 유적을 살펴보았다. 다호리 유적은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많은 고분군이 밀집된 곳이다. 1988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 때 이곳에서 널과 함께 부장품이 출토됐다.

다호리 유적을 둘러보면서 겨울에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호리 유적은 억새밭인데 여름에 왔다면 잡초로 인해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호리 유적을 한 바퀴 구경하고 돌아 나오니 유적 한 모퉁이에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에는 붓, 부채,거울, 활과 화살, 밤, 동전 등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은 산언덕에 있는 무덤이었는데, 창원 다호리 유적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무덤 하나 보이질 않는다. 다호리 유적은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봉분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고,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다호리 유적은 주남저수지 인근 습지대에 있었다. 습지대이기 때문에 유물도 밀폐돼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창원 다호리 고분군터
창원 다호리 고분군 안내판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다호리 유적 출토 유물

다호리 유적은 사적 제327호로 지정하여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사적은 국보와 보물과도 같은 국가 지정 문화유산이다. 다호리 유적에서 무엇이 출토되었기에 사적으로 지정된 것일까?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차를 몰아 김해박물관을 찾아간다. 주차장이 유난히 한적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전시실 개편 공사로 인해 1층만 개관하고 있었다. 1층에는 실물이 아닌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 1층 창원 다호리 고분에서 발굴된 통나무 관이 전시실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목관묘 속에는 여러 부장품이 들어 있었는데, 부장품은 죽은 이가 생전에 사용한 물건일 수도 있고, 당시에 유행한 물건일 수도 있다.

다호리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이곳에서 매우 특별한 유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1호 고분에서 붓과 삭도(削刀)가 출토되었다. 붓은 글자를 기록하는 필기도구이고, 삭도는 나무판에 쓴 글자를 깎아 내어 지우거나 수정하는 칼을 가리킨다.

다호리 출토 붓은 중국의 붓과는 재질, 형태, 보관 방법이 달랐다. 붓대의 양 끝에 털을 부착하여 실용성을 높였고, 붓대 가운데에는 구멍을 뚫어 끈으로 필가(筆架, 붓을 걸어놓는 기구)에 걸어둘 수 있는 형태다. 붓대의 재질도 대나무가 아니라 옻칠한 나무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출토된 붓은 한쪽 끝에만 털이 달려 있고, 세워서 걸어 두는 형태이고, 붓대도 대나무로 만들었다. 다호리 출토 붓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가야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붓으로 보인다.

삭도는 옻칠한 칼집에 들어 있었고, 칼 한쪽에는 둥근 손잡이가 달려 있다. 무덤에 붓과 삭도를 넣었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기록도구를 매우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붓과 삭도가 출현한 것은 가야시대에 종이나 나무판에 문자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나무판에 쓴 문자 중 잘못 쓴 것이 있으면 깎아 내고 다시 기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호리 유적에서 글자를 쓰는 붓과 글자를 지우는 삭도가 출토됨으로 인해 기원전 1세기경 경남에 기록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다호리 출토 붓과 삭도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된 목관
창원 다호리 1호 고분에서 출토된 붓 세 자루와 삭도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목간이 대량 출토됐다.

목간에 문자를 기록하고 수정하기 위해서는 삭도가 필요하다. 다호리 유적에서 삭도가 출토된 것은 성산산성 목간과 관련성이 높다. 삭도는 나무판에 쓴 글씨를 긁어 지우는 칼이다. 여기서 나무판은 곧 목간을 가리킨다. 삭도가 있음으로 인해 목간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경남에서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된 성산산성을 찾아갔다. 함안 읍에서 여항산 방면으로 차를 달려 낙화놀이로 유명한 무진정(無盡亭)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무진정은 조삼(趙參)이 1542년에 지은 정자다. 무진정을 잠시 둘러보고 차를 성산산성으로 몰았다. 산성을 오르는 경사가 제법 급하다. 차 계기판에는 처음으로 보는 빨간 경고등 불이 들어온다. 어쩔 수 없이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갔다. 산 정상(139.4m)에 오르니 산 아래에는 넓게 펼쳐진 들판이 펼쳐졌다. 멀리 말이산 고분도 보인다. 산성에는 잘 축조된 석축이 나오고, 산성 내부는 발굴이 한창이다. 이 산성은 아라가야 멸망 직후인 6세기 중엽 경 신라에 의해서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산성이라고 하면 매우 험준한 곳에 있는 요새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성산산성은 나지막한 산등성이 위에 있는 평온한 주거지처럼 보였다. 산등성이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함안 읍과 창원 진동을 오가는 79번 국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산산성은 곧 남해에서 실어 온 물자를 경남 내륙으로 운반하는 교통의 요충지를 감시할 수 있는 요새지였다.

성산산성 연못에서 신라시대 목간이 대량 출토됐다. 목간은 문자를 기록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목제품을 말한다. 나무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고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 기록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함안 성산산성에서 6세기 신라시대 목간 245점을 발굴했다고 한다. 이 목간들은 가야가 멸망한 직후, 가야를 최종 병합한 신라에서 점령지를 다스리는 과정에서 6세기 무렵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 성산산성에서 우리나라 목간 245점이 출토됐다. 성산산성 목간은 수화물에 꼬리표로 매단 하찰(荷札) 목간이 주종을 이룬다. 하찰 목간은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얼마나 보낸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목간 기록에는 낙동강 상류 상주의 지명들도 보인다.

함안 성산산성 석축
함안 성산산성 연못터
함안 성산산성 출토 4면 목간
◇결론

창원 동읍 다호리 유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붓과 삭도가 발견되고, 성산산성에서는 목간이 다량으로 발견된 점으로 보아 경남은 오래전부터 기록문화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기록문화가 발달함으로 인해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체계화된 행정도 일찍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산산성 출토 목간의 기록은 문헌이 적은 경남의 고대사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자 기록은 가야의 정치·경제·사회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나아가 경남지역의 출판 인쇄 문화 발전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희 경상국립대고문헌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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