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에코델타동이 웬 말인가
[경일포럼]에코델타동이 웬 말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4.02.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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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얼마 전 부산시에서 외래어로 된 동 이름을 쓰려고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라일도 팔아먹더니 아파트도 팔아먹고 이제 나라땅까지 팔아먹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팔아먹다니 도대체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는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건 일도, 집도, 땅도 남의 말에 팔아먹었다는 말이다. 남의 말과 글에 정신이 팔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공기관 이름과 사업이름은 온통 외래어 투성이고 뜻도 모르고 국적도 없는 해괴한 외래어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 벽마다 대문짝 만하게 난무하더니 이제는 내나라 땅이름인 주소에까지 외래어를 쓰려고 하니 이 어찌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부산시는 낙동강 하구의 강서구에 에코델타시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있다. 201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오는 2028년까지 7만여 명이 입주하는 도시라고 한다. 우선 에코델타시티, 뉴욕시티처럼 무슨 미국 한 도시 이름 같지 않은가.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지난해 부산시 지명위원회에서 강동동·명지1동·대저2동을 합친 새로운 법정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지명위원회는 도대체 어느 나라 위원회인가. 강서구 구청 관계자는 “이제 남은 건 구의회 의견 수렴과 행정안전부 타당성 검토·승인이다. 이후 조례를 통해 법정동 설치를 공표하게 된다”고 한다. 2월 행안부 승인만 남았다고 하니 이 땅에도 머잖아 미국 동 하나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행안부와 국토교통부의 공공데이터포털에 올린 전국의 법정동 이름에 외국어로 된 지역은 지금까지는 한 곳도 없다. 따라서 ‘에코델타동’이 행안부 승인까지 이루어진다면 전국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된 법정동 이름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이러자 한글학회·한글문화연대·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75곳)은 최근 성명에서 “국민 생활의 기본 단위임에도 이를 외국어로 지으려 한다. 외국어 남용을 부추기는 꼴이고,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로서 할 짓이 아니다”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서구 5명의 국회의원 전원도 새로운 법정동 신설은 긍정이나 100% 외래어로만 이루어진 동명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시의원들도 반대한다고 하니 기다려 볼 일이다. 지난 2010년 대전 유성구에서도 ‘관평테크노동’이란 외국어가 섞인 동이름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많은 단체와 시민들의 반대로 석 달 만에 이를 폐기하고 관평동으로 했다고 한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땅이름(지명)에는 예로부터 그 지역의 오랜 문화나 삶, 역사, 전통을 담고 있다. 따라서 지명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에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된다. 땅은 우리 조상의 뿌리이고 삶터이며 혼이다.

조상 대대로 써온 고유한 우리말 땅이름은 조선시대 한자어로 바뀌었다가 나라잃은시대 또 한번 일본식 한자어로 사라졌다. 매화와 전혀 관계도 없는 큰산(한뫼)의 뜻이 황매산이 되고, 밤티가 율현(栗峴)으로, 찰비산이 한우산(寒雨山)으로 바뀌었다. 지금 도시가 들어선다는 낙동강 하구 하단(下端)의 옛이름이 ‘아래치’ ‘끝치’라는 것도 아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써왔던 아름다운 토박이 땅이름들이 뜻도 모르는 한자어로 바뀐 곳이 전국에 수없이 많다. 지금 이를 굳이 찾아 새로 바꾸라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외래어만큼은 쓰지 말자는 것이다.

법정 동이름은 공공기관 이름이다. 따라서 국어기본법에 따라야 하니 외래어로 쓰면 안 된다. 국어기본법 제14조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로 돼 있다. ‘공문서 등’이란 말에는 기관 이름과 땅이름도 해당된다. 따라서 적어도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이름이나 법으로 정해진 공공언어들은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로 써야 한다.

나라잃은시대 일본은 조선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려고 했다. 민족말살정책의 하나인 이른바 창씨개명이었다. 그들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면 우리를 그들 민족인 황국신민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일찍이 알았던 것이다. 남의 나라 땅이름도 그들 마음대로 마구 바꾸었다. 우리는 그런 아픔을 한 번 겪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는 언제부턴가 외래어를 고급스러운 상류 언어로 생각하고 우리말은 시대 뒤떨어지고 촌스러운 언어로 생각해 왔다. 한자와 한문을 부러 쓴 사람들이 오랫동안 상류 지배 계층에 군림한 것처럼 외래어를 부러 쓰는 사람들이 상류 고급 문화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처럼 이제 우리말과 글로 우리 문화를 당당하게 세계에 알려 자랑할 때가 됐다. 더 이상 나라와 겨레를 남의 말에 팔아먹는 열등 민족은 되지 말아야 한다.

부산시는 지금 당장 외래어 동이름인 엘코델타동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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