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개천에서 용 난다’는 꿈 꼭 되살려야 한다
[경일시론]‘개천에서 용 난다’는 꿈 꼭 되살려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2.0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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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위원
이수기 논설위원
이수기 논설위원

 

과거에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해도 불가능한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했을 때 ‘개천에 용(龍) 났다’는 속담을 썼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청춘들은 인간승리라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믿지 않는 듯하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감명 깊은 입지전(立志傳)뉴스도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 잘 만난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가 스스로 성공하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점점 옛말이 됐다.

‘흙수저’ 학생들은 제아무리 노력해도 개천을 벗어날 수 없다. 용은커녕 이무기도 될 수 없다는 판단이 앞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 돈도 없고, 시쳇말로 ‘빽’도 없어 공교육만 받은 자녀들은 용이 될 수 없다. 부모들은 끼니를 굶더라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지만 비싼 사교육을 안 받고 공교육만으론 개천에서 용이 나올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어렵다. ‘금수저’에 주눅이 든 학생들은 잘난 부모가 제공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명문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으로 승천한 용들을 보며 자포자기다. 학력, 경제적 능력, 직장까지 대물림되자 청춘들은 결혼, 연애, 출산 등 ‘포기’가 늘고 있다.

사교육은 공교육에서 뒤처진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사교육은 고액 과외, 부유층의 족집게 과외 등으로 인식되며 공교육을 뛰어넘었다. 고교생 4명 중 1명은 “우리 반 친구들, 수업 시간에 자요”라고 한다. 이처럼 공교육이 무너진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좋은 직장을 잡으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이란 ‘SKY행 학력 사다리’를 한발 한발 올라가야 되는데, ‘흙수저’는 그럴 수 없다. ‘흙수저’들은 현실에 쓰디쓴 좌절과 패배감에 휩싸여 용이 되어 보겠다는 꿈을 아예 꾸지 않는다.

2022년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는 26조원으로 2007년 이래 역대 최대 규모였다. 영재학교 학생 중 월평균 150만원 이상 고액 사교육 비율이 일반고보다 6배 이상 높았다. 부모는 망국적 사교육비 부담에 등골이 휘고, 학생은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입시 경쟁에 고통받는다. 과도한 교육열과 사교육이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황폐화된 공교육 정상화에 있다. 학원보다 학교가 정규 교과 내용을 잘 가르치지 못하는 한 사교육은 절대 근절될 수 없다. 명문대학을 나와야만 미래가 보장되는 학벌주의가 지속되는 한 사교육이라는 고질병을 고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사교육의 빈부격차로 돈이 없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난 탓이라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SKY 대학’ 재학생 70%가 ‘금수저’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비싼 사교육의 혜택을 누리는 만큼 상류층이 일류대학에 가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셈이지만 뒷맛이 쓰다. 능력보다 부모 재산, 학력, 스펙이 여전히 중요한 성공의 잣대라 나라 미래가 암울하다. 권위주의적 낡은 구태 정치판, 사교육 등 사회 여건이 별로 변한 게 없고, 기업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 계층 간 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만 가고 있다. 활력을 높이고 건강성을 되찾기 위해서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 주는 꿈을 꼭 되살려야 한다. ‘흙수저’들이 희망이 없을 때 한(恨) 많은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

획일화된 수능으론 잠재 역량을 평가할 수 없다. 한두 문제 차로 대학이 바꿔지는 고득점보다 창의적인 인재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입시 다원화로 인재 양성 방식으로 고쳐야 사교육이 없어진다. 대입제도를 서민층에 불리하지 않게 하고, 비싼 등록금을 부담하는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도 보완해야 한다. 고졸자 채용 확대, 중소기업 처우 개선, 비정규직 제도, 규제완화 등 정책도 결코 말로만 끝나선 안 된다. 4·10 총선은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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