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이순신과 공공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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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2.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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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꼭 40년 전의 일이다. 교정의 양지바른 동산에서 후배들과 역사 인물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거북선을 두고 왜군들이 ‘메쿠라부네(盲船)’라고 했다더라. 눈먼 배, 눈멂의 배, 맹인의 배로 이해된다. 한 후배가 내게 물었다. 왜 그런 말을 썼을까요? 나도 몰라. 쟤네한데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을 테지. 다들 웃었다. 지금도 왜 메쿠라 운운했는지 알 수 없다. 영화 ‘노량’에서도 ‘메쿠라부네’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영화 속의 북소리가 지닌 상징성은 나의 청감을 자극했다. 이것은 내게 각별한 울림으로 마음의 파문을 일으켰다. 이 북소리는 그때에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리였다. 천인이 감응하는 소리였다. 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소리이기도 하다. 오늘날에 사는 우리를 일깨워주는 소리다. 영화는 IT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컴퓨터그래픽에 의한 정교한 물 표현. 낮밤의 명암과 날씨의 청담(晴曇)에 대한 다채로운 조명 연출. 이런 점에서 좋은 영화는 기술의 아들인 동시에 예술의 딸이다.

하지만 역사 해석이 아쉬웠다. 노량해전에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왜군의 화포에 의해 거북선이 침몰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전공을 왜곡한 일본 군공기(軍功記)에 노량해전에서 거북선 두 척을 분멸했다는 내용과 비슷하다. 영화는 역사를 이기려고 해선 안 된다. 영화는 아들의 죽음을 자주 강조했다. 노량해전과 시점도 맞지 않는 얘기다. 이순신은 엄정한 공공(公共)의 사상가다. 그에게 사사로운 복수의 감정이 있었을까? 또, 이순신 시대에 웬 판소리냐?

그런데 영화 속의 등선 육박전 장면은 잘 했다고 본다. 한 이순신학 교수는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겠느냐고 의문을 제시한다. 어둠 속의 노량해전에서 적개심에 불탄 조선 병사들이 쇠갈퀴와 긴 낫을 찍거나 휘두르면서 선상에 올랐다. 일본 사료에서 이런 조선 병사들을 철포(조총)로 쏘아 죽였다고 했다. 전시에 시마즈 요시히로의 아들인 다다쓰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소년 수행원의 구술 자료에 의하면, 왜선이 파괴되지 않았는데도 선상의 장졸들이 대부분 죽었거나 부상을 당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노량해전은 대승 중의 대승이었다. 북서풍을 이용한 이순신의 화공 전략은 200 척의 왜선을 분멸시켰다. 왜군의 병력은 거의 전멸 상태였다. 십중팔구의 전력을 상실한 채 도망갔다. 그동안 우리는 이순신의 전사를 삼가는 마음으로 인해 대승을 대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는 대승이란 객관적인 역사 실체에 접근해야 한다.

이순신의 공공성은 그의 후손들에게 계승되었다. 5대손 이봉상은 이인좌의 난 때 충청병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반란군의 초반 기세에 의해 체포되었다. 반란군이 그에게 투항을 권고했지만, 그는 이충무공의 후손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죽여 달라고 했다. 그의 요구에 따라, 그는 죽었다.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귀족 작위를 받은 이가 137명이었다. 전주이씨가 38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순신의 덕수이씨는 아무도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한, 독립에 헌신한 건국유공자 중에서 이순신계의 인물은 무려 11명이 된다. 그의 후손 10명에 후손며느리 1명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사익에 흔들리는 공인, 국민만 바라본다는 정치 지도자, 정치에 물든 법조인 등이 이순신의 공공성을 깊이 성찰할 때다.

영화는 국가주의 도취감, 세칭 ‘국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무병의 병사들은 가족을 떠올리며 처절하게 살려고 절규한다. 누구나 측은지심이 생긴다. 나지막한 애국심보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 더 높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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