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아가씨’ 작곡가 백영호 평전 출간
‘동백 아가씨’ 작곡가 백영호 평전 출간
  • 백지영
  • 승인 2024.01.25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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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백경권 씨, 5년 여 만에 집필
육성 테이프 등 생생한 기록 담아
28일 부산 근현대역사관서 북콘서트
최근 트로트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국민 트로트 ‘동백 아가씨’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한국 대중음악계 발전을 견인한 작곡가 백영호 평전이 출판돼 눈길을 끈다.

아들이 음악인이 되길 꿈꿨던 아버지의 바람을 알지 못한 채 고향 진주에서 의료인의 길을 걸어온 장남 백경권 씨가 직접 집필한 책 ‘동백아가씨의 영원한 연인 작곡가 백영호’다.

글솜씨에 자신이 없어 한참을 망설였지만, 아버지의 뜻을 잇지는 못하더라도 평전을 만들어보자는 결심 끝에 부친의 지인을 수도 없이 만나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담긴 육성 테이프를 들어가며 원고를 써내려갔다.

지난 24일 오후 진주 상대동 백영호 기념관에서 백경권 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서울내과의원 한편에 마련된 공간이다.

평소보다 일찍 진료를 마무리한 백 씨는 의사 가운이 아닌 살굿빛 스웨터 차림으로 기념관 내 피아노에 앉아 부친의 곡들을 연주하는 데 한창이었다. 조만간 있을 북콘서트(출판 기념회)에서 축하 공연을 맡은 트로트 신예 채수현과 미리 합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반주를 마친 백 씨는 “나는 사실 의사가 주 전공이 아니라 음악이 주 전공”이라며 “음악을 하니까 이렇게 음악 이야기를 다루는 책도 쓰고 기념관에서 소규모 음악회도 열 수 있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 씨가 부친 평전 집필을 시작한 건 지난 2018년. 이전부터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수없이 받았지만 바쁜 병원 일에 치여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소 글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자신의 글재주에 자신이 없었던 점도 결심을 저어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써야 한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 뒤에야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육성으로 기록한 구술 테이프 모음을 발견했어요. 유품 중 두꺼운 책 표지겠거니 생각했던 게 알고 보니 테이프가 잔뜩 담긴 상자였던 거죠. 그 테이프 중 하나에 ‘큰아들을 음악가로 키워 음악 자산을 맡기고 싶었는데 의사의 길을 갔다’는 아버지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그 꿈을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된 거죠. 생전에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평전으로 아버지의 음악 세계를 남기자 싶었죠. 주변의 강한 권유도 무시할 수 없었고요.”

그렇게 진료 전후로 새벽과 심야 시간 짬짬이 책 준비에 나섰다. 처음에는 부친 탄생 100주년이던 2020년을 목표로 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출판이 힘든 사회적 분위기가 됐다. 이참에 더 꼼꼼한 평전을 만들자 싶어 집필을 이어왔고, 5년여 대장정 끝에 지난해 탈고했다. 그리고 ‘동백 아가씨’ 발표 60주년이 되는 올해, 책을 세상에 내놨다.

출간이 미뤄지며 좋은 점도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구술 테이프를 뼈대로, 부친의 지인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로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원고를 썼는데 없어진 줄만 알았던 ‘3번 테이프’를 지난해 극적으로 발견한 덕에 책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3번 테이프’는 아버지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에 담긴 일화가 담긴 테이프로,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나 잘못 알려졌던 내용들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백영호가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한 부산시가 부산근현대역사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그를 조명하고 싶다며 다양한 자료를 기증받아 갔는데, 기증품 정리 과정에서 이 ‘3번 테이프’를 발견한 것이다.

구술 테이프와 별개로 쌓여 있던 800개 이상의 일반 테이프를 하나하나 듣고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이 거의 끝날 때쯤 일반 테이프 모음에 섞여 있던 이 ‘3번 테이프’를 찾아냈다.

“아버지가 레코드판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쎄씨봉에 가서 망신당한 끝에 어떤 반전이 찾아왔는지 같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죠. 돈이 없어서 ‘동백 아가씨’를 이미자에게 줬다거나, 영화 ‘동백 아가씨’가 인기가 없어 개막 1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는 그간 잘못 알려졌던 내용들도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테이프에서 확인할 수 있었죠. 최고의 작곡가로 군림하다 정상에서 내려온 아버지의 심중도 담겼고요.”

백 씨는 오는 28일 오후 2시 부산 근현대역사관에서 평전 발간 기념 북콘서트에 나선다. 부친이 처가가 있던 진주를 자주 방문했고, 그 역시 진주에 기념관을 만들고 다양한 선양 행사를 해왔던 만큼 인연이 깊은 진주에서 열 수도 있었지만 부산시의 뜨거운 러브콜에 마음을 굳혔다.

북콘서트에서는 그의 강연과 함께 백영호와 각별한 연이 있는 가수 장사익, 최근 백영호의 곡으로 ‘미스트롯3’에서 활약한 진주 출신 트로트 신예 채수현, 할아버지를 따라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백경권 씨의 아들 백치웅 등이 작은 음악회로 채워진다.

백 씨는 “5년에 걸친 평전 집필은 마무리됐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책과 부산근현대역사관 전시 등을 통해서 작곡가 백영호와 당시의 가요사가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고 백영호 작곡가 평전을 집필한 그의 장남 백경권 씨가 저서 ‘동백아가씨의 영원한 연인 작곡가 백영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백지영기자
고 백영호 작곡가 평전을 집필한 그의 장남 백경권 씨가 저서 ‘동백아가씨의 영원한 연인 작곡가 백영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백지영기자
백경권 씨가 평전 집필 끝자락에 발견한 발견한 부친 백영호 작곡가의 ‘동백아가씨’ 관련 일화가 담긴 테이프. 극적으로 발견한 이 테이프를 통해 그간 잘못 알려졌던 내용들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평전 원고도 상당 부분 수정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백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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