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3)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63)
  • 경남일보
  • 승인 2024.01.18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17)『시우담문학』 진주지역 시 동인지(1)
『시우담문학』 시 동인지는 박우담 시인이 지도하는 그룹이다. 박우담 시인은 지리산 일대의 중등 교사를 전전하며 시를 쓰다가 정년퇴임한 시인이다. 교장이나 무슨 무슨 회장 같은 것을 아예 눈에 두지 않고 시를 고시공부 하듯이 도서관에 박혀서 이 나라 시 잡지를 뒤적거리며 살아왔다.

그가 지리산 마천중학교 교사로 출퇴근하기도 했는데, 그때 그를 두고 필자는 「마천으로 출근하는 사람」이라는 시를 쓴 일이 있다.

“아직 눈이 쌓여 있거나 내리고 있을 3월에/ 아침마다 가방 들고 마천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다람쥐 다니던 길이 허물어지고 파르티잔 다니던 길이/ 생겨났다가/ 그 길이 흔적 없이 사라진 산골 마을/ 마천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죽어라 산이 좋아 기를 쓰고 들어가는 이들이 가다가/ 잠시 쉬면서 어디로 들어갈까 들어갈 방향/ 알아내는 마을/ 마천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참은 이상한 일이다// 역류도 아니면서 모반도 아니면서/ 거슬러 드는 이의 가방,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경전일까/ 시집일까// 아, 아직 눈이 쌓여 있거나 내리고 있을 3월에/ 아침마다 마천으로 드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이 있다.”

한때는 역류하는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숯굽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출근하는 사람들, 일상인 사람들이 주로 들낙거린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으로만도 시는 재미 있다.

동인회장 이진주 시인은 「발간사」에서 “우리 문학회는 시를 사랑하는 이들이 매주 목요일에 모여 시를 읽고 시를 공부하는 곳입니다. 좋은 시를 발견하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회원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뜻이 맞는 몇 명이 모여 ‘시우담문학회’를 발족하였습니다. (중략) 이미지와 은유에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 사람 사는 일을 투영하고 인간애를 표현할 수 있는 시, 그런 진실을 찾고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시를 추구할수록 어렵고 막막하고 고뇌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합니다”하고 시 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피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마천으로 출근하는 사람’의 그 태도나 입지와 같은 일상의 흔들기, 무량 정서의 숯굽기, 적당한 이미지의 비틀기 등에 관심을 보이는 동인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진주 시인의 이 고뇌는 박우담 시인이 이 나라 현대시의 정글에 들어서서 부딪히고 싸우고 쟁취해낸 부분이 적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고 그 수련의 일정부분 거둔 수확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라 할 수 있다.

김성진 진주문인협회 회장은 「축사」에서 우리 시단의 현실을 지적하고 그 타개하는 열정이 이 동인회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등단 시인이 2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시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좋은 시를 쓰는 방법밖에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등단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단울 했더라도 이내 살아지기 쉽습니다. 등단이란 시인으로의 출발이지 최종 목적이 아니니까요.”

진주문인회장 다운 지적이고 희망이다, 2만명 시인시대에 살아남는 길이 어디에 있을까? 늘 고민하며 시를 써라, 의식 있는 시인의 시를 쓰는 것이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 최고의 문예지 『현대문학』 주간은 신인들에게 자주 이렇게 주문했다. 등단은 누구나 하는 통과의례이고 그중에서도 누가 더 경쟁력에서 이기는 길은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고 지적해 주었다. 197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 J주간이 당시 진주문인협회 김석규 시인(당시 진주여고 교사)의 『풀잎』 출판기념회가 시내 어디 예식장에서 열렸을 때 『현대문학』 출신 시인을 위해 천리길을 와서 지역에서 듣지 못하는 화살강의를 해주었다.

“시인은 많지만 다 옳은 시인이 아니다. 옳은 시인이란 제 목소리를 가지는 시인을 가리킨다. 등단 10년 20년이 지나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도 하는데 김시인은 드물게도 제목소리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들이 진주문인협회 진주문인들의 자산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