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풀의 공식(송문희)
[주강홍의 경일시단]풀의 공식(송문희)
  • 경남일보
  • 승인 2024.01.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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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 자라는 한해살이들,

짧은 목숨도 채우지 못하고

오가는 발길에 밟히거나 바퀴에 뭉개진다

풀의 중심은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쓸모없는 풀의 목을 잡아채는 찰나

쓱, 손을 베였다

선명한 핏방울,

풀잎은 칼을 어디에 숨겼을까

풀이 살아남는 방식은

뿌리를 단단히 묻는 법

바람에

흔들리며 넘어지며 더 많은 씨를 뿌린다

손에 든 풀물

박박 문질러도 빠지지 않는다

풀의 피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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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서는 저 나약한 풀들도 비밀 병기가 있다.

함부로 몸을 내어주다가도 어느 순간은

날카로움을 감추지 않고 저항한다.

무심코 잡아당긴 풀의 날에 베인 손가락의 비명.

핏방울을 보고서야 서로의 생존을 이해하고

풀의 살아가는 방식을 알게 된다.

상처의 풀냄새에 베인 피 냄새가 어쩌면

공존을 당부하는 깊은 말씀일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사실은 하루가 지났는데 사람들은 일 년이 지났다고 한다.

묵고 지친 것들을 죄다 정리하고 새로운 것들을 각오한다.

길섶 같은 삶의 언저리에 새 생장을 주문한다.

더러는 바람에 흔들리고 밟히며 일그러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 다짐은 신선하고 대단하다.

시작되는 한 해가 같이 사는 세상이 되길 희망한다.

모서리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의 날에

베이지 않는 그런 날들만이면 좋겠다.

이 해가 끝날 때까지 약조의 말씀이 유효하면 더욱 좋겠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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