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60살이 넘어서 뒤늦게 향토사 공부를 시작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가까운 자기 동네 역사를 배우는 게 재미있다. 20대 시절에 살았던 대구시 대명동이라는 동네 이름의 유래를 알았을 때는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모명재에 갔을 때였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이 자기 나라였던 명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서 ‘대명’이라고 했단다. 그가 유명한 두보의 후손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왠지 두보와도 가까워진 것 같았다. 합천과 의령에서는 훌륭한 사람을 만나서 기뻤다. 역적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은 내암 정인홍의 시신을 아무도 겁이 나서 수습하지 않을 때 용감하게 나선 분이 있었다. 친구인 이대기와 함께 한양에서 합천까지 시신을 모시고 와서 장례를 치른 내암의 제자인 동계 정온을 알았을 때는 정말 반가웠다. 의령 입산마을에서는 백산 안희제의 아들인 안상록에게서 어릴 적부터 배운 이수병을 알게 되었다. 하천 건너편의 구산마을에 살던 이수병이 저녁때마다 건너와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훌륭하신 분의 정신이 이런 식으로 이어져서 쉽지 않은 통일운동을 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발품을 팔아서 향토사를 공부하는 데에는 실망도 있다. 막연하게 훌륭하신 분이라 알았는데 뜻밖에도 나쁜 모습을 알았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산청 남명기념관에서 남명 조식의 신도비를 보았을 때였다. 글을 지은 분이 남명을 폄훼하고 북인을 탄압한 집권세력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이고, 글씨를 쓴 분은 한일합방 직후에 총독부로부터 자작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다는 걸 알고서는 남명의 후손과 제자들에게 실망했다. 거창의 동계고택을 들렀을 때는 동계 정온의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에 중추원 참의를 하면서 앞장서서 친일활동을 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훌륭한 조상을 욕보인 게 안타까웠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역사를 왜곡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걸 볼 때는 화가 난다. 창녕 호국공원에 전제 장군 기념비와 조각품이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화왕산에서 치열하게 왜군과 전투를 하는데 곽재우 장군보다 더 앞장서서 전제 장군이 싸우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맞붙어 싸우는 전투는 없었다. 합천군사에도 ‘화왕산 전투’가 아니라 ‘화왕산 축성’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성을 지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전제 장군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합천에서 의병활동을 한 훌륭한 분이다. 다만 쿠데타에 성공한 권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없는 전투를 꾸며낸 게 문제다. 전제 장군의 후손인 전두환씨가 대통령일 때인 1982년에 세워진 조각이다.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왜곡되어있는 근현대사를 몇 군데서 볼 수 있었다. 권력의 횡포 혹은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인 백성의 입장에서 향토사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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