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암컷’이라는 소리
[천왕봉] ‘암컷’이라는 소리
  • 경남일보
  • 승인 2023.11.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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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사물을 추상적으로 지칭하는 의존명사 ‘것’은 사람을 낮추거나 동물을 이르는 경우에도 쓴다. 북한의 말버릇, ‘남조선 것들’ 따위가 대표적 용례다. 우리 국민을 심하게 낮잡는 말로, 듣는 이에게 강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것’ 앞에다 자웅(雌雄)을 뜻하는 암·수를 얹으면 암과 수에 들어 있는 끝소리 ㅎ이 더해져 암컷·수컷이 된다. 사람더러 암컷 수컷 운운 하면 그게 말이겠는가.

▶접두사 암은 한국어의 기층어인 고대 이집트어 amh(암;흡수하다)에서 왔다고 한다(임환영, 아리랑 역사와 한국어의 기원). 그 지역에서 XX염색체 생명체의 생식기를 뜻하는 낱말이 먼 옛날 인류의 이동 때 한반도에까지 왔다는 것. 기층어(基層語)는 어떤 종족이 새 언어를 배울 때, 그 언어에 영향을 준 언어를 이른다.

▶‘딸ㅇ리’ 따위 비속어를 종종 구사해온 민주당 한 전직 의원이 ‘암컷이 설친다’는 소리를 뱉어 논란이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름을 대어 특정하지 않았지만 누구더러 한 말인지 모두가 다 안다. 그러나 발언은 그 사람만 피해자일 수는 없다. 사람을 향해, 여성을 향해 뱉은 상소리인 만큼 우리 사회가 가볍게 보아넘겨선 안 될 말이다.

▶그 진영이 보인 행태 또한 어이없다. 발설 현장에서 터진 그들의 박장대소, 평소 여성 인권에 벌떼 같던 여성 의원들의 침묵, 그 발언 감싸는 당직자들…. 성스러운 낱말 어머니(엄마)라는 한국어 기본 어휘의 ‘엄’도 어원은 암(雌)이라고 한다. 국어학자 최기호가 제시한 학설이 이러한 터에 암컷이란 낱말, 여성 비하 문맥으로는 물론이고, 뻘밭 정치꾼들 입에 도나캐나 담을 말은 더더욱 아니리라.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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