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해로동혈(偕老同穴)
[경일춘추]해로동혈(偕老同穴)
  • 경남일보
  • 승인 2023.11.07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학부모교육 강사
박상재 전 서진초등학교장·학부모교육 강사


부부의 얼굴을 서로 자세히 쳐다보면 주름살 한 개마다 10년의 아픈 사랑과 고생이 담겨 있다. 눈빛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하물며 마음을 스친 당신은 나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84년을 해로한 미국의 존 앤 베타 부부는 “배우자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라며 “바꿀 수도 없고 그럴 수 있다고 기대도 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부부는 소유가 아닌 존재의 대상임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묵직한 글이 있다. ‘함께 늙고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다. 즉, 죽는 날까지 생사를 같이하겠다는 부부의 맹세이다. 행복은 무엇일까?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을 지낸 레이건은 퇴임 후 5년이 지난 후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사람들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 하루는 레이건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수영장 바닥에 쌓인 나뭇잎을 긁어모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낸시 여사의 눈가에는 이슬이 떨어졌다. 아내를 많이 사랑했던 레이건은 젊은 시절 아내를 도와 집 안 청소를 자주 해주었다. 낸시는 그때를 생각하며 행복해하던 기억을 되살려 주고 싶었다. 그날 밤에 낸시 여사는 경호원과 함께 남편이 치운 낙엽을 다시 가져다가 수영장에 몰래 깔고는 남편에게 낙엽 청소를 걱정했다. 낸시가 걱정하자 레이건은 낙엽을 치워 주겠다면서 일어나 정원으로 나갔다. 낮이면 레이건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낙엽을 쓸어 담고, 밤이면 부인 낸시는 다시 낙엽을 깔고, 그렇게 낸시는 남편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돌려 놓으려고 애를 썼다.

이런 헌신적인 사랑의 힘 때문이었던지, 레이건은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을 잃었지만, 아내 낸시만은 확실하게 알아보았다. 레이건은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내가 살아 있어서 당신이 불행해지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라고 한탄했지만 낸시는 레이건에게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당신 없는 행복보다 당신이 있는 불행을 택하겠다”며 “부디 이대로라도 좋으니 10년만 더 내 곁에 있어 달라” 한다. 가슴이 찡해지는 말이다.

레이건은 낸시의 헌신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낸시의 소원대로 10년을 더 살다가 2004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이 있을까? 마침 TV에 결혼 7년 차 젊은 남편이 결혼의 비법을 이야기한다. “연애 때의 모습은 잊어라! 이해하려 말고 변해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라!”며 씁쓸히 웃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