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계수나무 이야기
[경일춘추]계수나무 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23.11.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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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김은영 경남도립남해대학 교수


음력 9월 보름이 며칠 전이었다. 후보름 첫날 퇴근길에 밤하늘을 올려보노라니 가을이 이리 한창인데 세상 시름이 대수겠나 싶게 둥근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필자가 일하는 남해대학에는 잘 자란 목서(木犀) 고목이 많아 이맘때면 꽃향기가 아찔하게 뒤덮이는데, 이날 달빛과 목서 향이 얼마나 유난스럽던지 밤이 꽤 이울도록 교정을 거닐고 또 거닐었다.

시인 이백도 달빛을 좋아해 이런 시를 남겼다. ‘어렸을 땐 달을 몰라/ 하얀 옥쟁반이라 불렀지(小時不識月/呼作白玉盤)’ ‘신선이 두 발을 늘어뜨리면/ 계수나무는 또 얼마나 둥그렇게 무성해졌던가(仙人垂兩足/桂樹何團團)’ 천재시인도 어릴 때는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붉은 달’ 하고 노래했던 모양이다. 또 달빛을 무성한 계수나무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옛날 사람들은 달나라에 토끼도 살고 두꺼비도 살고, 항아(姮娥)―불사약을 훔쳐먹고 달나라로 날아가 버렸다―도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오강(吳剛)이 도끼로 계수나무를 찍는 형벌을 받고 귀양 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달나라 계수나무는 키가 오백 자가 넘는데, 찍으면 금세 새 가지가 나서 아무리 찍고 베어도 넘어뜨릴 수 없다는, 중국판 시시포스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달에는 토끼도, 항아도, 오강도 살지 않는다. 계수나무 역시 진짜 나무가 아니다. 그런데도 예부터 계화 향을 노래한 글은 부지기수로 전한다. 사람들이 계수와 동일시한 나무가 있었다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14년 기사에도 중국사신 갈귀(葛貴)가 ‘늦가을 좋은 경치에 (…) 계수나무 향기 자리에 가득하네’라는 시를 지어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계수나무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중국 계림(桂林)에 가면 된다. 병풍처럼 어우러진 산과 강과 동굴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의 시화(市花)가 바로 계화, 즉 목서 꽃이다. 이름 때문에 월계수와 혼동하는 이가 많지만, 중국에서는 목서를 계수라 부른다. 가을에 백색, 혹은 황금색의 자잘한 꽃을 피우며, 색깔에 따라 은목서, 금목서 등으로 나뉜다. 향기가 짙어 ‘만리향’으로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목(李木)과 이서(李犀)가 이 꽃을 가리켜 ‘하늘의 계화 향기가 땅에 떨어져서 종자가 되고 싹을 낸 것’이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목서’라 부르게 됐는데, 그들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만 리 밖 여인의 분내처럼 은은하던 목서 향이 지고 있다. 올가을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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