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별이 된 그대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여성칼럼]별이 된 그대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10.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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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전옥희 진주여성회 대표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 진주의 한 농민운동가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기후위기로 과수원에 탄저병이 돌아 노심초사 단감을 살피던 그는 추석 당일 날에도 과수원을 찾았다가 화재로 인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들 둘과 아내를 두고 가기 싫은 길을 떠났을 그가 너무 안됐고, 남은 가족이 안타까워 마음이 아팠다. 장례식을 찾아오는 사람마다 오열하며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인의 가족을 위로하기도 힘들고,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수용하는게 고통스러웠다.

고인의 가족에게 애도와 위로를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무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을 나눌 때는 말 한마디보다 따뜻한 눈빛, 함께 울기, 손잡기, 포옹이 더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위로라고 건네는 말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나의 진심과 달리 상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청소년 아들에게 “이제 니가 가장이다”, 남편을 잃은 아내에게 “이제 아들만 보고 살아라”라는 말은 불편하다. 이 위로의 말에도 숨은 가부장제가 엿보인다. 무의식은 말로 표현된다. 고인을 위해 애도하고, 마음을 잘 추스르고 남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잘 살아보자고 하는 진심의 말을 길게 전해 보자. 청소년 아들이 가장과 남성다움의 무거움을 벌써부터 짊어지지 않도록 그 나이에 맞는 위로의 말을 전하자. 그리고 고인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일 것이다.

또 기억해야 할 이들이 있다. 작년 10월 29일, 수많은 인파가 이태원의 한 골목에 몰려 압사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핼러윈 축제로 눈 앞에 예상된 참사에 경찰도, 행정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159명의 사람들은 죽어갔다. 사람들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싶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어떻게 1년을 보냈을지 그 마음을 짐작하기 어렵다. 한창 빛나야 할 청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마감했고, 부모들은 믿을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어떤 위로도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전국 곳곳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유가족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기억’이다. 아직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사회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추동해 내는 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런 사회적 참사가 다시 생겨나지 않기를 바라며, 진상규명을 밝힐 수 있는 특별법 제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회학자 김명희는 추모라는 집합적 실천의 양식이 금전 보상이나 개별적 이유로 환원되지 않는 상징적 배상과 사회적 치유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통일운동가 권낙기 선생은 “추모는 결의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셨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의례는 고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남은 자들의 책임과 약속을 다지는 사회결속의 과정이자, 애도와 함께 집단 기억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하늘에 별이 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집중해보자. 고인의 명복을 빌며 충분히 애도하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죽은 이를 대신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돌아보자. 허망한 죽음에 인생의 허무함에 빠져있기보다는 지금 살아남은 우리는 어떤 결의를 해야 할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진실을 향한 다짐, 함께 할 수 있는 행동,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새 세상을 꿈꾸던 농민의 벗 정철균님, 이태원 참사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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