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야철 기술자의 땅’ 금관가야 왕권이 잠든 곳
[특집] ‘야철 기술자의 땅’ 금관가야 왕권이 잠든 곳
  • 박준언
  • 승인 2023.10.1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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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집단무덤 김해 대성동고분군
동아시아 국제무역 중심으로 두각
철기술 이용해 ‘기마 전사단’ 운영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은 ‘잊혀진 제국, 가야’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야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고대국가로 주변 중앙집권적 열강들과 병존하면서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다. 영남을 중심으로 호남까지 분포하고 있는 가야고분군은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독보적인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경남일보는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가야고분군을 소개한다.

김해 대성동고분군은 6가야 중에서도 맹주로 활약했던 금관가야의 고분군으로 가야 정치체의 이른 시기 유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금관가야는 서기 42년 수로왕(~199년)이 가야를 건국한 후 구형왕(521~532년)까지 10대에 걸쳐 491년간 존재했던 고대국가다. 지금의 김해평야는 가야 시대에는 바다였기에 ‘고김해만’으로 불렸다. 바다를 이용한 해상교역이 가능했던 금관가야는 특히 ‘철’을 다루는 야철 기술이 뛰어났으며 이를 매개로 발전했다. 당시 금관가야를 다스렸던 왕들의 집단무덤이 대성동고분군이다.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91년 국가사적 제341호로 지정됐다.

대성동 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과 봉황동유적 사이의 표고 22.6m의 왜(애)꼬지(애구지: 애기 구지봉)라 불리는 구릉과 구릉의 주변 일대에 위치한다. 애구지 구릉은 길이 약 280m, 너비 약 50m에 이르며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하게 뻗은 독립 구릉이다. 일제 강점기 지적도와 1954년 항공사진에 의하면 애구지구릉의 남동쪽에 금관가야의 도성지로 추정되는 봉황동유적을 이어주는 구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63년 김해공설운동장이 만들어지면서 이 구릉이 삭평되었는데 이때 많은 유물도 함께 사라졌다고 주민들이 전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1990년 도시개발 과정에서 고고학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됐다. 대성동고분군은 김해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1세기부터 5세기 후반까지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가 순차적으로 축조됐다. 초기에는 구릉지 주변 평지에 목관묘가 축조되고, 2세기 후반부터 구릉지 상부로 목곽묘가 확장해 간다. 3세기 후반부터 5세기 전반까지 구릉지 정상부에 매장부의 공간이 넓은 대형 목곽묘가 축조되고, 중·소형 목곽묘는 대형 목곽묘의 주위와 구릉지 사면부에 축조됐다. 5세기 후반에 구릉지 남쪽 끝에 축조된 석곽묘를 끝으로 금관가야가 신라로 복속되면서 고분 축조는 중단됐다. 대성동고분군에는 ‘봉분’이 없기 때문에 고령 지산동고분군이나 함안 말이산고분군보다 과소평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덧널무덤의 내부로 함몰된 층위를 보면 봉분이 존재했으며, 높이는 4세기 후반은 최소 120㎝, 5세기 초에는 최소 200㎝로 추정된다.

◇전기가야 시대상 알 수 있는 주요 유적

대성동고분군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무덤은 지석묘, 옹관묘,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수혈식석곽묘 등 여러 종류가 확인됐다. 2014년 6차까지 진행된 조사에서만 212기의 무덤이 발굴됐다. 목관묘는 주로 구릉 주변의 낮은 곳과 평지에 조성됐으며, 목곽묘, 수혈식 석곽묘와 같은 대형무덤은 입지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 입지했다. 발굴조사 결과 애구지의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층의 묘역이 별도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지는 등 전기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 사회, 구조를 해명하는데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경성대학교 박물관이 1990년(1차)부터 1993년(4차)까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는 대형목곽묘와 그 속에서 다량의 철기류와 토기류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금관가야 지배자들의 부장품들이 출토됐다. 특히 구릉의 능선부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2차 조사에서는 왜계 유물인 파형동기가 부장된 13호, 북방계 유물인 청동솥(동복)이 조사된 29호분 등 총37기의 무덤이 조사됐다. 제3차(1991년) 발굴조사는 목관묘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확인됐고, 제4차(1993년) 조사에서는 목관묘와 목곽묘를 비롯한 57기의 무덤과 ‘순장’의 풍습도 확인했다.

5차(2009년)에서 10차(2020년)까지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이 학술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5차 조사에서는 국내 출토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말안장’과 ‘은제환’이 발굴과 금관가야 왕들의 무덤 2기가 최초로 확인됐다. 제6차 발굴조사는 5세기 후반 수혈식 석곽묘와 청동기시대 석개목관묘가 대성동고분군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파괴가 심하긴 하지만 공백으로 있던 4세기초 목관묘도 확인됐다. 제7차 발굴조사에서는 신라·가야유적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금동제말갖춤·허리띠와 서역계 유리 등이 새로운 자료들이 많이 확인돼 국내외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제8차(2013년) 발굴조사에서는 점토로 밀봉한 초대형 목곽묘인 70호 주곽과 금동제품 추가 발굴됐다. 제9차(2014년) 발굴조사에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5세기 중엽의 대형 목곽묘와 청동기시대 대형 지석묘가 처음 발굴됐다. 제10차(2020년) 발굴조사에서는 옹관묘~목곽묘까지 다양한 유구가 조사됐으며. 도굴되지 않은 108호 목곽묘가 최초로 발굴됐다.

◇중국·일본 등 교역 흔적 남겨져

대성동고분군 유물은 대부분 도굴로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유물들을 통해 금관가야가 종적인 신분질서가 확립돼 고대국가의 초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철기를 바탕으로 바닷길을 이용해 해상교역을 활발히 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대형 목곽묘와 석곽묘에 부장된 가야토기는 고배·기대·장경호로 구성되며 가야연맹의 공통적 장례풍습을 보여준다. 꺾인 입구의 고배, 손잡이 달린 화로모양의 기대로 대표되는 금관가야식 토기가 성립된다. 목곽묘에는 토기와 철기가 가장 많이 묻히고 중국, 북방 등 대륙과 일본에서 들여온 물품들도 존재한다. 특히 귀족들의 사용한 수정, 마노, 유리 등으로 만든 장신구도 부장됐다. 철기는 덩이쇠, 말갖춤새, 갑옷과 투구, 칼과 창, 낫과 도끼 등 다양하다. 특히 말갖춤새는 금관가야 철기 제작 기술의 선진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철제갑옷과 투구를 통해 금관가야가 4세기에 이미 ‘기마 전사단’을 운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신구는 금동으로 만든 관이나 허리띠장식과 구슬로 만든 귀걸이, 목걸이, 동물유존체로 만든 팔찌나 펜던트 등도 출토됐다. 특히 대성동 29호 금동관은 가야 신라 출토 금동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또 중국에서 수입한 청동거울과 용무늬 허리띠, 북방에서 수입한 청동솥, 일본에서 수입한 청동제품 등의 교역품은 대성동 고분군을 조성했던 정치체가 중국-가야-일본열도로 이어진 동아시아 국제교역 체계에서 활발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박준언기자

 
김해 대성동고분군 전경. 사진=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김해 대성동고분군. 사진=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김해 대성동고분군 88호 진식대금구. 사진=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김해 대성동고분군 91호 동완. 사진=김해 대성동박물관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76호 ‘경식’. 사진=김해 대성동박물관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115호 ‘경식’. 사진=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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