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한글피다-꼭지만 남은 옛이응(박종현)
[주강홍의 경일시단]한글피다-꼭지만 남은 옛이응(박종현)
  • 경남일보
  • 승인 2023.10.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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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머니 등을 밀어드렸다
욕조 귀퉁이 낮고 둥글게 쪼그려 앉으신 어머니
때수건한테 물려줄 한 겹 때마저
남아 있지 않는 야윈 몸
연신 개운타 개운타 외치신다
한사코 앙가슴만큼은 손수 씻겠다시는 완고한 고집 너머
슬쩍 곁눈질로 훔쳐본 어머니 가슴
세상에,
온몸 실가지들이 몰려와
까맣게 여문 열매 두 알을 떠받치고 있었다
얼마나 긴 세월 다독여 왔을까,
열여섯 해 전 떠나보낸 큰아들 내외
곪아온 기억들 퍼내고 또 퍼낸 자리
저토록 단단한 그리움을 키우고 계셨을 줄이야
욕실 문 나서는 아흔의 어머니
두 손 가득 ㅇ은 사라지고 꼭지만 남은 옛이응
그 거룩한 열매를 받들고 나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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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 둥글게 말아 쪼그려 않으신 어머니가 ㅇ을 닮으셨다.

한사코 손으로 가리는 가슴은 튼실했던 옛ㅇ에서 이제 까만 꼭지만 남기셨다.

살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가슴뼈에 매달린 저 까만 가슴팍 꼭지, 삶의 가슴앓이에 다 모든 것을 다 퍼주시고 이제 작은 점으로 남으셨다.

둥근 세상을 둥글게 품고 사셨던 어머니.

언제나 따스한 온기로 온 자식을 거두시던 젖가슴이 열매 한 점으로 붙들고 계신다.

시인은 한글을 시화해, ‘한글 날다’라는 시집을 펴내고 이번에 경남문학상을 받았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시적 감성으로 형상화한 시편들이 무척 특별하다.

한글의 우수성과 우리말의 우수성이 함께 담긴 시 한 편이 눈물마저 둥글어 접근한다. 엊그제가 한글날이었다.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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