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우리에게 개혁 이외에 대안이 있는가
[경일시론]우리에게 개혁 이외에 대안이 있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3.08.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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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영국 총리 대처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것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우리에게는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각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따 ‘TINA’로 요약한 이 말은 이후 자유시장경제를 상징하는 구호가 됐다. 1980년 영국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대처는 “영국병을 고치려면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강도 높은 개혁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말로 국내 반대 세력들의 반론을 차단했다.

당시 영국의 경제 사정은 복잡하고 녹녹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처의 논리는 명쾌했다. 정부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두거나 차입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돈을 풀수록 인플레이션은 심화하고, 빈곤층의 가계는 더 어려워진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소비는 위축된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치공학적 논리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다. 긴축은 정치적 자살행위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재임 시절 “미래를 위한 정책은 유권자의 외면을 받고, 정권교체로 이어진다”고 한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표현대로 건전재정을 좋아할 정치 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윤석열 정부가 공약한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은 입법을 통해 완성된다. 여소야대 정치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방법은 정책집행을 통해 직접 나서는 길밖에 없다. 복지부동 관료와 무기력한 여권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시장개입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생필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당국의 구두 개입과 함께 공권력이 동원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 또한 대통령이 커질수록 시장은 작아진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정치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 풀기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써야 한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가 숙명적으로 맞닥뜨리는 딜레마다. 윤석열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대통령도 거대한 야당의 의회 권력에 밀려 정작 핵심인 구조는 바꾸지 못한 채 프로세스에 치중하고 있다.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는 과제가 번번이 국회에서 좌절 되고 있는 것이다.

이권 카르텔을 깨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어마크(earmark) 예산이다. 농업인이 소나 양의 귀를 뚫어 자신의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해 붙이는 표식을 뜻하는 이어마크는 특정 사업의 선심성 예산으로 인식되는 행정용어이기도 하다. 5년 계획으로 잡힌 도로 등 인프라 사업도 그렇다. 정부 복지사업을 대행하는 민간 사업자들도 전년도에 받은 예산을 한 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이들에게 긴축은 “줬다가 뺏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카르텔 구조는 고착화하고 개혁은 좌초된다.

모든 정치인이 개혁을 외치지만 구호에 그친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와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국민 여론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재임 시절인 2013년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이라며 대처 총리의 TINA를 본받아 과잉복지를 축소하고 영국병 수술에 성공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2010년 유럽의 부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긴축을 강조하며 ‘대안이 없다(alternative-less)’고 했다. 자유시장경제가 옳고 유일한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논쟁은 오래 전에 이미 끝났다. 자유시장경제의 튼튼한 기반위에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놓쳐서는 안되는 기본 원칙이다. 이것 외에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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