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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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8.1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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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가야제국 맹주 아라가야의 땅에 문인들 모이다(2)
2023년 경남문협 찾아가는 문학기행 ‘함안편’ 『합강의 땅, 함안을 노래하다』에는 아라가야를 새기는 시들이 많고 특히 ‘아라홍련’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다. 신비를 시인들은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일 터이다. 김병수, 배한봉, 안창섭, 이창하, 강병선, 정현대 등이 그들이다.

배한봉은 아라홍련을 산문형으로 쓰고 있는데 ‘만개한 붉은 연꽃’의 이미지를 찾아가고 있다.

“내리쬐는 볕 속에서 어떤 이는 맑은 향기의 내력을 듣고, 또 어떤 이는 칠백년 기다림이 부활하는 소리 듣는다/ 후끈 밀려오는 물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못가를 걷다 보면 설렁거리는 그 연꽃들 사이로 고려의 흥망성쇠가 보이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말발굽소리 출렁거린다. 다시 귀기울이면 발해 유민들의 목소리가 수런거리고,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는 소리,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는 소리 걸어나오고, 목화 벙글고 피는 소리 일렁거린다” 7백년 동안 씨앗으로 흐르다가 연꽃으로 부활한 내력은 신문기사로 처음 들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장구한 신비를 캐내는 배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이서린은 「애도」라는 시에서 ‘말이산 고분군’을 그린다.

“우리의 둥근 이마가 파도처럼 너울지는 말이산에 오려거든 이보시게, 밤이나 저녁에 와 주시게, 구름 낀 밤도 좋고 별이 총총한 밤도 좋으이. 촉촉하니 비 오시는 저녁도 좋고, 바람이 풀잎 흔들며 몰아치는 날도 좋다네. 구름이 뭉텅이로 달려가는 날은 또 어떤가. 한 번쯤 눈 감고 관통하는 시간을 느껴 보시게. 귓가를 스치는 소리에 집중하며 말발굽 소리도 상상하시고 천년 하고도 몇 백년이 지난 여기 그때를 살다간 찬란함과 상실이 있었던 자리를 생각해 주시게, 그리고 아무도 그대를 알아주지 않고 목놓아 울고 싶을 때는 더욱 환영한다네” 의젓한 톤으로 역사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시인의 상상이 말이산 고분에서의 심회를 다듬고 있다.

그리고 ‘무진정 낙화축제’를 쓴 시인도 현장성 시편들을 내놓고 있어 놀랍다. 김성진의 「무아경에 들다」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이 빛을 잃은 어둑한 시간/ 온갖 우주를 담은 무진정/ 불이 꽃처럼 떨어진다/ 아 낙화(落花)인가 낙화(落火)인가/ 육모지붕 누각에 걸친 무지개다리/ 바람 부니 불빛이 성근다” 축제의 밤이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달균은 「백비(白碑)」를 쓰고 있다.

“무덤엔 단 한 줄 글귀도 새기지 마라/ 내 삶은 찬미할 그 무엇도 없으니/ 내생은 백골로 참회할 또 한 번의 시간이다/ 오백 년 왕도 잃고 동문의 벗들 잃고/ 한목숨 부지한 채 이곳까지 왔으니/ 남루한 죽음 앞에서 눈물일랑 보이지 마라.” 이 시는 고려 유신 모은 이오(李午)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생을 마감했는데 유언대로 무덤에 백비를 세운 것이 이 비다. 지조라 할까 왕조에 대한 충성이라 할까 그 불사이군의 서늘한 인격이 오히려 너절한 벼슬아치들의 어깨를 치고 있는 듯하다.

신애리는 시조 한 수로 그 ‘백비’를 기린다.

“앓어버린 육백년을/ 지우긴 아직도 멀어/ 혈곡리 산기슭에/ 숨겨 놓은 그 사랑/ 뻐국새 /피울음으로/ 비석되어 서 있다”이로써 고려 유신 이오(李午)의 비가 3개나 선 셈이 되었다.

정삼희의 「별자리 새겨진 말이산 고분군」은 고분군도 그 속에 있는 왕조도 토기들도 별자리로 떠 있다고 쓴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보고 계십니까/ 밤이오면 무거운 대지/ 온통 별자리 천지/ 별똥별 한반도 고대국가/ 세력 속 역사 펼칩니다/ 인연은 인연끼리/ 순장자 되어 떨어져/ 무정히 낙하합니다/ 통 모양 굽다리 접시 /불꽃 무늬 굽다리 접시/ 문양 뚜껑 닫고 /달그락거리는 밤이면 아라가야 고대문명/ 수라 만찬 펼쳐집니다”

이상규의 「새해 아라대왕 윤음(綸音)을 듣다」 는 함안 토박이 시인이 쓰는 본격 아라가야를 재생시키는 시로 읽게 된다. 이 시는 참가자 모두가 두루 읽고 지역에서 생을 보내는 군민의 목소리로 새겨들었으면 싶다. 단순 해설사 원고를 뛰어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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