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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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4.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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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최근 진주지역에서 나온 시집들(7)
정동교 시인은 산청군 시천면 출생으로 군내 행정 공무원으로 일관하는 삶을 살았다. 2007년 ‘문예사조’로 등단했고 필봉문학회 부회장을 거쳐 산청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번에 낸 시집은 ‘낚싯밥 올려주는 저물녘’(시와 편견)이다.

그는 지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악의 능선과 골짜기와 햇볕과 그림자와 강으로 내리딛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그 주변을 쓰다듬는 바람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거기 사람이 우거하는 번지가 생기고 벽지를 바르고 사철을 견디며 사는 주민은 나라의 끄트머리 행정의 관리 대상이 되었다. 그는 관리하는 사람이고 아울러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필자는 그런 그가 생태계 속의 생태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태계란 어떤 일정한 지역에서 생물들과 비생물적인 환경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하나의 계(시스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한 지역의 환경에 이바지하거나 환경이 되는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깊숙한 자연에 그 자연의 요소와 같은 토박이, 전형적인 그 속의 천연적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정동교 시인은 태어난 곳에서 국가 시스템의 공인이라는 역할을 오래 감내하며 살았기 때문에 필자는 그를 ‘생태 지식인’이라 부른다.

정시인은 지리산 생태를 사는 사람, 그 중에 거기 어울리는 시인으로서 시를 써왔다. 언어의 옷을 입을 때 지리산, 청내골, 덕천강, 은어, 새마을, 내원골, 중산리, 예치, 밤밭, 입덕문, 덕산장터, 시천면, 쪽달바위, 오지랑보, 상지마을, 갈티재, 청내천, 산불, 대성골, 산동백, 노거수, 진달래, 필봉산, 황매산, 고산정, 금호지, 선학산 등이 자연스레 따라나온다. 이런 산 속에 묻히거나 얹혀 있는 장소는 자연 장소성을 지닌다.

그에게 자연은 그림자로 각인되어 나타난다. “헤어진지 오래 되어/ 모습조차 흔들려도/ 그대 맴도는 그림자/ 떠날 줄을 모르네”(‘대추나무’ 전문)

정동교 인생 속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도 그림자로 흔들리고 있다. 그림자는 실물대이거나 그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다. “연하봉 자락 작은 터 청내골// 부모형제 네 식구 살았다/ 어느날 종소리 골 울릴 때 방 한 구석에 숨어서/ 엄마 빨리 들어오라고 조르던/ 네 살 기억은 없다/ 상지로 소개된 후/ 아버지와 큰 감 따서 지고 오던/ 삼십리 길// 지금은 남의 땅/ 덩굴에 옥죄이고 이끼 옷 입어 궁상스럽지만/ 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정묻힌 터라고/ 울렁거리고(‘청내골’)

태생지 청내골은 지리산 연하봉(1721)아래 첫마을이리라. 지리산이 함축하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함께 돌고 있는 곳이다. 정 시인에게도 지리산이 토지이고 살던 마을이 토지의 한 구석이다. 저 박경리의 토지이고 이병주의 한국 근대사를 포함하는 곳이다.

이어 정동교 시인이 아랫마을 30리 발치로 옮겨 앉는 이주의 역사는 근대사의 산골 역사가 지니는 엄연한 통과의례였을 것이다. 정동교 시인은 지리산이 식구들의 실존이고 근대로 옮겨 앉는 현장이라는 생태계의 한 배경이 되었다.

정시인은 나중에 이런 시도 쓴다, “폐교가 보이는 강가에 서서/ 나는 물끄러미 언어 낚시를 보고 있네// 강이/ 동화 속의 수채화로 나를 부르고 있네// 풍경화처럼/ 많은 자동차가 서 있고/ 강을 따라 모천으로 거슬러 오른 자들/ 서로 안부를 묻고 회포를 풀고 있네”(‘은어’에서)

폐교, 낚시, 모천 회귀 등과 같은 시대의 현실까지 당도하고 있다. 그 스스로 생태가 되어 생태를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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