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천왕봉 600회 오르기의 의미
[경일포럼]천왕봉 600회 오르기의 의미
  • 경남일보
  • 승인 2023.03.1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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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임규홍 경상국립대 명예교수


며칠 전인 이달 10일 지리산 천왕봉을 600회째 오르신 분이 계셨다. 정동호님이시다. 이걸 어떻게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나. 지리산은 1915m로 남한에서 두 번째 높은 산이다. 보통 사람은 일 년에 한번도 오르기 어려운 산이다. 아니 평생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것도 남들이 쉽게 오르는 경남환경교육으로 시작하는 쉬운 코스가 아닌 가파른 칼바위 코스로 오른다고 한다. 중산리 탐방안내소에서 천왕봉까지는 5.4㎞ 거리다. 중산리~칼바위~망바위~법계사~개선문 사이의 등산로를 이용하는 데 전체 산행은 왕복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600회라면 대략 계산을 해도 12년 동안 매주 한 번 씩 오른 셈이다. 우리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등산을 계속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다. 지리산을 한 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은 지리산 등산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끊임없이 올라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고 수십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거의 매주 한 번씩 등산을 계속 해 왔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흔히 새해가 오면 한 해 할 일을 계획하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 먹은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장님은 그 힘든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산을 오른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산을 올랐다. 그 인내와 의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소장님의 연세가 팔순이라는 데 더더욱 놀란다. 그 나이쯤이면 대부분 허리와 무릎은 이미 관절 마다 퇴행성으로 불편하고 아픈 나이다. 그런데 팔순에 지리산을 마을 뒷산 오르듯이 오르니 어찌 된 일인가. 소장님도 어찌 힘들지 않으시겠냐마는 그걸 이겨내는 그 인내와 의지력이 한없이 부럽다.

그리고 소장님께서 다리에 장애가 있다는 것에 또 놀란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짧고 약하다.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높은 산을 오르셨다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오래전부터 600회 등산을 할 때 같이 오르자고 약속을 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사실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 나이 칠십도 되지 않고 성한 다리를 가졌지만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 한편 두려웠다. 생각하면 부끄럽다.

소장님처럼 남들이 하기 어려운 기적과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미치지 않고는 결코 남보다 잘할 수 없다. 소장님은 산에 미쳐있다고나 할까. 산의 호연지기에 미쳤고 산의 아름다움에 미쳤을 것이다. 산을 정복하고 난 후 그 쾌감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미치지(狂) 않으면 미칠(及) 수 없다는 말이다.

소장님의 대업적을 보면서 나를 뒤돌아본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든 해보지도 않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포기하지나 않았나. 어디 한곳에 미쳐보지도 않고 성취한 이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워만 하지 않았는가. 게으름으로 나태한 생활에 빠져 세월을 무료하게 보내고 있지나 않은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시 한 수가 생각난다. 조선 중기 시인 양사언의 태산가다.

‘태산(太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온누리엔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삼월이다. 삼월에 지리산 천왕봉을 600회 오른 정 소장님을 본보기로 우리 모두 자신의 꿈에 도전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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