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일자리 창출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라
[경일시론]일자리 창출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라
  • 경남일보
  • 승인 2023.01.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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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인도 시인 타고르는 자국 출신의 후생경제학자이며 소득분배론의 대가인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센(Sen)에게 아마르티아(Amartya)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원래 벵골어로 불멸이라는 뜻이다. 열아홉 살에 당시에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구강암 진단을 받고도 살아남은 센의 운명을 내다봤던 걸까.

아마르티아 센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300만 명이 희생된 벵골 기근을 보고 깨달았다. 기아의 원인은 흉작이 아니라 정치의 실패였다. 식량은 들쥐가 들끊는 정부 곡창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이 경제 발전에 성공한 것은 시장경제를 도입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적절한 사회적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센은 인간의 실질적인 자유를 중시하는 학자다. 발전은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다. 자유를 넓혀가는 것은 발전의 주된 목표이자 수단이다. 그는 현실 문제로 실업을 가장 우려 했다. 실업은 소득뿐만 아니라 자존감까지 잃게 하고, 기술 퇴보와 가정 파괴, 사회적 소외, 정치적 불안을 부른다. 실업자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는 실업이 사회를 다이나마이트 처럼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 다시 그를 떠올린 것은 실업과 그에 따른 부자유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집값과 전세값 문제로 절망하는 이들도 많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될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이들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일자리 문제는 그 모든 문제를 포괄하며 그 무엇보다 더 절박한 문제다. 경제와 사회 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단 하나의 척도가 있다면 그것은 실업 통계다. 지난해 실업자 수는 320만 명이었다. 하지만 이 숫자는 현실을 오도 하기 십상이다. 더 많은 시간 일하고 싶어 하는 이들, 본인이 아프거나 가족을 돌봐야 해서 일을 못 하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아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지금 일자리에 목말라 하는 이들은 사실상 400만 명을 웃돈다고 봐야 한다. 15~29세 청년층에 네명 중 한 명이 이런 이들이다.

젊은이들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한다. 팬데믹은 그 실낱 같은 가능성마저 앗아갔다. 절망한 이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기에 나서기도 한다. 절망이 깊을수록 위험도 크다. 일자리가 말라가는 경제에서 자산시장은 얼마나 더 팽창할 수 있을까.

위정자들은 그들에게 사회적 기회를 말할 낯이 없다. 어떤 변명도 부질없다. 더 늦기 전에 일자리 창출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 것이다. 실효성과 진정성이 의문시되는 정책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더 이상 관전평만 늘어 놓아서는 안된다. 일자리 정책 지원에 야당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따로 없다. 어느 쪽이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이념의 철장은 스스로 부숴야 한다. 진영의 벽도 얼마든지 허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표만 보고 있다. 그동안 정책 관료들은 거시지표만 봤다. 그래서 정책은 무차별적이었다. 지금 같은 식이면 재정으로 아무리 돈을 뿌려도 투자와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산 거품으로 경제의 불균형만 키울 수 있다. 접근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일자리에 목말라 하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그들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일일이 들여다보며 끝까지 해결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고용과 복지뿐만 아니라 교육과 주택, 금융 당국도 같이 달려들어야 한다. 체계적이고 끈질기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용 가능성을 키워주는 방식이다. 필요하다면 새 조직도 만들고 민간 기업도 활용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일자리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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