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답답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정국이다. 누구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알고도 그러는지, 아니면 아예 모르는지도 알 길 없다. 언제부턴가 그랬다. 염치도 없고 체면도 없다. 하나 있다면 ‘니편 내편’ 뿐이다.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된 지 오래다. 제아무리 잘 하더라도 내편 아니면 잘한 것은 보이질 않는다. 사사건건 대립과 반목, 질시의 향연이 펼쳐진다. 매일 매일 드라마틱한 상황극이 연출되고 있다. 저널리즘은 고사하고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로 둔갑하기 일쑤다. 가짜 뉴스가 정치인의 입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진짜로 포장돼 국민을 혼란케 만든다. 오죽했으면 ‘니편 내편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등장했을까. 모든 사안이 정치를 접하는 순간 딱 둘로 나누어진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프로파간다’를 자처한다. 정치와 돈독한 ‘이인삼각’ 체제를 구축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엮어 낸다. 야당 대변인은 스스로 ‘협업’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천연덕스럽게 한통속임을 털어 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고 물고 물리는 끝없는 공방만 되풀이 되고 있다. 혼돈의 블랙홀 같다. 태초의 혼돈이 이랬을까 싶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입도 없는 태초의 혼돈.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않는다. 다만, 입만 살아 세상을 모진 말로 들쑤시는 형국이다. 말과 글이 난무해 세상을 자기 편할 대로 오독해 내는 기술은 가히 탁월한 경지를 보이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나랏일을 맡은 장차관이나 ‘어공’ ‘늘공’ 할 것 없이 언감생심 바른 말은 고사하고 엉뚱한 말만 내뱉는다. ‘폼 나게 사표’ 같은 말이 나오고, ‘웃기고 있네’ 같은 메모가 등장하고, 민망한 단어가 하루걸러 쏟아진다. 하이에나 습성과 헛발질은 야당 쪽 전매특허 같다. 야당은 사사건건 대통령 발목 잡는 논평과 비난에 날 샐 줄 모르다 보니 자책골에 논리의 오류로 ‘개콘’ 보다 더 웃긴다는 비아냥을 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카톨릭 사제는 나랏일을 위해 해외를 순방중인 대통령 부부가 탄 전용기의 추락을 기도하는 ‘시대착오적 증오’를 보이고 있다. ‘직업적 음모론자’로 지칭된 극렬 스피커들의 언사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0.73%’에 대한 아전인수 식 해석이 낳은 신파극이다. 오만과 독선적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양측 모두 신뢰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오독하고 미련을 떨치지 못해 생긴 일들이다 .
취임 6개월을 맞이한 윤 대통령이 세 번째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중요한 일정을 마무리 짓고 돌아왔지만, 정작 국내 정치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취임 후 야당대표를 아직도 만나지 않은 것은 문제다. 통 큰 정치로 꽉 막힌 정국을 풀어야 한다. 정치는 만남의 예술이다. 니편 내편 따지지 말고 여야가 만나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국정의 난맥상을 풀어가는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는 받는 일은 추상적인 구호나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에 달려 있다. 권력쟁취를 두고 싸울 땐 싸우더라도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 소통하는게 정치다. 먼저 다가설 용기가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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