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대한민국의 품격, 어디쯤 와 있는가
[경일시론]대한민국의 품격, 어디쯤 와 있는가
  • 경남일보
  • 승인 2022.06.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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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명예교수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이나 약소국으로 보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무역규모 세계 6위 등 경제규모로는 세계 10위 안에 든다. 1인당 국민소득 세계 27위로 지난해 G7의 하나인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수출상대국은 233개국에 달한다. 도쿄올림픽 참가국 수인 206개국보다 많다. 코카콜라 판매국 220개 나라보다 많다. K팝 등 한류는 핫한 장르가 돼 세계로 퍼져 나아가고 있다. 국토면적이 세계 107위로 좁은 국가지만 경제영토, 문화영토는 세계적 규모다.

지난 시절 우리는 스스로를 작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격어온 굴곡된 역사속에 일제 강점 식민지, 6·25 전쟁, 혹독한 빈곤의 시절을 겪은 탓일 것이다. 우리 국민속에 입버릇처럼 남아 있는 ‘우리 같은 서민’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 같은 개도국’이란 고정관념이 언어습관에 배어 있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것은 여러모로 되새겨 볼 의미가 있다. 1964년 UNCTAD 설립이후 처음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으로서 필요조건인 경제규모에 걸맞는 정신적 충분조건을 갖추었는지 한번 반성해 보자.

개도국 시절에는 선진국을 부지런히 좇아가고, 잘 사는 나라를 따라하고, 때로는 베끼면 됐다. 설령 마찰이 생겨도 개도국이니까 대충 넘길 수 있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롤모델도 많았다. 자원 빈국이지만 인적자원 만큼은 부국이었던 덕이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과 정신적 성숙 사이에는 뚜렷한 시차가 존재한다. 개도국에서 자란 산업화 세대나 민주화 세대나 그 형태가 ‘개도국 습성’을 못 벗어난 점은 대동소이하다. 남들보다 약삭빠르게, 하나라도 더 챙기고, 요령껏 행동하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여겼다. 빽, 연줄, 뒷문, 무대뽀, 패거리, 치맛바람 등이 그 부산물이다.

개도국 습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다. 그때마다 ‘안전불감증’ ‘예고된 인재(人災)’라고 비난만 무성했을 뿐, 고치지 못하고 또 터지길 밥 먹듯이 했다. 눈에 보이는 문제에만 급급하고 보이지 않는 근본원인에는 소홀했으니 ‘예고된’것 조차 예방하고 대처할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매사 ‘늑장대처, 대증요법, 땜질처방’이 반복되는 이유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인의 아비투스(집단적 습속)는 확연히 달라졌다. 교통사고가 나면 목청 돋우며 삿대질하던 풍경부터 거의 사라졌다. 병목구간의 순차적 진입, 한줄 서기, 출입문 잡아주기 등도 익숙하다. 그 나라 수준을 보여주는 공중화장실이 확 변했다. 내로남불에 분개하고, 갑질이나 권력 남용에 힘없이 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옳고 그름 위에 진영논리, 법치 위에 떼법, 과학 위에 미신과 음모론, 매뉴얼 위에 요령이 판치는 나라가 선진국일 수 있을까.‘우리 편’의 거짓말에 관대하다 못해 결사옹위까지 한다. 해외 시각에서는 소득 3만달러인 부국이 자유와 인권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둔감한 것을 도무지 납득하지 못한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이 지금도 의미 있으려면 북한, 홍콩, 신장위구르, 미안마,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벌어지는 자유와 인권 탄압에도 공분을 느껴야 마땅하다.

이젠 우리가 따라갈 나라보다 우리를 따라올 나라가 훨씬 많아졌다. 건국 후 70여년 보다 나은 삶, 보다 발전된 나라를 위해 부단히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그 언저리에간 진입했다. 나라가 선진국인지는 국민 개개인이 선진시민의 품격을 지닐 때 비로소 실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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