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그물
비로소 꽃이 된 우리!
벽과 그물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다. 전혀 다른 질료로 만들어졌으며 다른 형상일 뿐 아니라 쓰임 또한 다르다. 벽은 경계 짓고 막는 것이며 불통인 반면, 그물은 가두거나 거둬들여 혼합한다. 인간들처럼 벽이 그물을, 그물이 벽을 대상화하기 딱 좋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것인데, 전혀 다른 세계란 ‘차이’를 가진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벽과 그물의 관계는 꽃이다. 벽의 타자는 그물이며 그물의 타자는 벽인데, 이들이 붙어 서서 무한 책임을 짐으로써 비대칭적인 관계가 된다. 거기에 꽃이라는 윤리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겠다. 지금 시인의 의식은 꽃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이전인 벽과 그물의 타자라는 만남에 머물고 있다. (시인 · 디카시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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