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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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1.05.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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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요즘 발표된 경남의 소설, 수필, 순례기(19)
 
유시연 작가의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 두 번째 이야기다.

“이냐케 수녀가 옆에 서 있던 다른 수녀에게 나를 소개한다. 그 수녀가 환한 미소로 나를 안아주며 인사를 한다. 인사가 끝난 후 두 손을 맞잡는다. 뒤에 뻘쭘하니 서 있던 아오(남편)를 인사시킨다. 인사가 끝나고 그녀를 따라 긴 복도를 지나간다. 조용한 복도 양켠에 문이 있고 그중 빈 방으로 안내해서 들어가니 탁자가 놓여 있고 의자 서너개가 있다. 이냐케 수녀가 오렌지 주스를 가져와 따라준다.

그녀는 다시 우리를 위해 수녀원 구석 구석을 안내한다. 무성한 마로니에 나뭇가지가 밝은 햇살 가득힌 정원에 서 있고 동그런 분수대에서는 흰물줄기가 치솟는다. 오렌지 나무가 빼곡하니 서 있는 정원 끝에 아치를 이룬 나무가 있고 성모상이 서 있다. 성모님께 잠깐 인사를 드리고 대성당으로 간다. 대성당은 전체적으로 흰색이 지배적이어서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이 난다. 오후 6시 미사는 느리고 고요한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작가는 수도원의 분위기를 잘 아는 듯 구석 구석의 인상과 의미를 짚어주고 있다. 로마의 ‘골목’에 대해서 안내한다. “로마는 흐리게 흐르는 도시다. 호텔이나 수녀원 숙소나 묵직한 자물쇠 키를 돌리고 돌려서 문을 연다. 디지털 키에 익숙해진 나는 로마식에 적응하는 중이다. 버스를 타거나 십리씩 걷는 것은 예사다. 둘레길을 걷듯 하루종일 걷고 또 걸으며 오래된 도시의 냄새를 향유한다. 천년 혹은 이천 년 된 유적 위에 현대건물이 들어서 있고 아직도 곳곳에 유적 발굴이 진행중이다. 오래된 벽이나 돌틈에 씨앗이 자라고 꽃을 피운다. 로마에는 대형마트가 없다. 도심지 골목이나 도로변에는 큰 상가가 없다. 건물 벽을 따라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가게는 평수가 작지만 식의주 생활에 필요한 것들로 구비되어 있다. 주택가 길목이나 식당, 구두점, 빵집, 약국, 이불가게 등을 주민들이 이용한다. 골목의 바나 레스토랑에는 그 마을 주민들이 파스타나 피자, 혹은 커피나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오래된 풍경처럼 친밀하다.”

로마 바티칸에서 찾을 곳은 ‘바티칸 미술관’이다. 작가의 안내를 더듬어 가 보자. “바티칸 미술관에 입장하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게 암표상이 접근한다. 대부분 흑인계인 암표상 청년들은 유독 아시아인에게 접근하여 끈질긴 설득을 한다. 예약을 안하고 온 탓에 무작정 기다린다. 바티칸 성당에 들어가려는 광장의 긴 줄을 목도하고 난 터라 한 시간쯤은 기다릴 참이다. 몇 년 전에 왔던 바티칸은 그때와 다름없이 순례자와 여행자들로 붐볐다. 이날은 동유럽이나 남유럽 깃발부대 단체객에게 밀려 시간이 더디게 갔다. 문득 내 인생이 복기되는 느낌이다. 같은 장소에 다시 오다니…. 외씨 버선길을 걸을 때 영주에 다시 갔을 때도 그런 느김이었다. 같은 장소에 다시 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보며 미칼렌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화가들을 떠올린다. 천지창조와 낙원 추방 그림은 촬영금지라서 담아오지 못해 아쉽다. 많은 비용을 들여 예술 작품을 구매한 교황들 또 전임 교황의 뒤를 이어 예술품을 사고 전시 공간을 확보한 후임 교황 이야기는 놀랍다.”

필자에게도 천장 벽화에서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의 진보적 화풍을 지적했던 분 중 한 분이 리얼하게 그려진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런 장면은 교회에서 직권으로 고쳐볼 법하지만 교회의 오랜 전통은 쟁점이 있을 때는 그 자체로 놓고 눈으로 논의하게 내버려 둔다는 어떤 지도자의 해설이 지금 귀에 쟁쟁한 채로 있다.

다음은 ‘아씨시’로 앵글을 돌린다. “아씨시 수녀원에는 한국인 수녀가 있다. 갖고 간 누룽지를 좀 드릴까요, 했더니 아니 그 귀한 것을? 그러며 좋아한다. 안식년 여행 중인 부산 신학 대학교 미카엘 신부가 앱을 깔아주고 몇 시간 동안 네 번에 걸쳐 열이틀치 호텔 예약을 마무리해 준다. 십년 전 로마에서 유학한 미카엘 신부님의 유창한 이태리어에 동행하여 미네르바 신전이 있던 자리, 그 앞 광장에서 와인, 에스푸레소,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 중 감탄했다는 노천바 라고 미카엘 신부님이 설명해 준다.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인 미네르바 신전은 현재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천 년이 넘는 신전 터에 세워진 1300년 된 성당 건물이 담백하고 밝은 색조로 이방인을 맞아 준다. 유한한 삶, 짧은 생의 도정에서 바라보는 오래된 신전은 무심하고 편안하다.” 작가는 무심하고 편안하다고 하는데 독자는 우선 에스푸레소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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