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는 시장음식이다. 시장골목 한 켠을 차지하는, 순대집 하면 주인이 할매나 늙스구레한 아지매가 아니면 일단 끌리는 맛부터 별로다. 아저씨나 할배가 순대를 파는 곳은 못 봤다. 그래서그런가 순대하면 떠올리게 되는 말이 시장, 골목, 할매와 같은 말이다.
진주의 천전시장에는 유명한 순대집이 두 곳 있다. 시장 초입에 마주 보고 전을 펼치고 있는데, 둘 다 주인이 할매다. 아니, 1인 기업이다. 한 집은 퉁퉁하고 고운 할매고, 한집은 마르고 팍팍한 인상이다. 당연 퉁퉁한 할매집이 장사가 잘 된다.누가 처음 퍼트렸는지 몰라도 그 집 순대가 더 맛나다는 소문이 나 있다. 나도 이따금 그 집에서 서서 순대를 먹기도 하고, 또 한봉지씩 싸서 집으로 가기도 했지만 반대편 할매집 순대를 먹어보지 못했으니 맛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길을 지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순대를 사려고 하니, 퉁퉁 할매집에는 앉은뱅이 의자에 다섯이 옹기종기 앉아 순대를 입으로 밀어넣느라 정신이 없고, 반대편 할매집엔 선 채로 손으로 집어 먹는 사람 하나뿐이라 ‘그래, 이 집 순대도 맛봐야지’ 싶어 순대를 시켜봤다.
난, 순대 꼬랑지를 좋아한다. 약간 씁쓸한 맛이 있긴 하지만 그게 더 쫄깃하다. 껍질이 두껍고 길어서다. 순대는 속 맛이라고 하지만 난 껍질 맛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서울 사람들이나 꼬랑지를 먹는다고, 이 동네에선 꼬랑지는 버린다고 하지만 맛을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다. 아직도 순대 꼬랑지를 버리고 있다면 한 입 맛보시라. 그제야 순대의 제맛을 알게 되리라.
그건 그렇고 두 할매집 순대에는 특별한 맛의 차이가 없었다. 그저 출처 모를 소문에 할매의 인상이 근거했을 뿐. 여튼, 순대는 군것질거리에 속한다지만 순대집으로 이름난 거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서울대 앞 신림사거리의 순대시장이 철판볶음순대의 원조는 될 것이다. 학창시절엔 거의 매일 주사리방구치게 다녔던 것 같으니 말이다. 화려한 철판볶음 보다 다라이에 연신 김을 내며 삶는 순대가 군것질거리로 제격이다. 장을 보다 출출한 기운이 들면 순대집 귀퉁이에 앉아 한 접시 비운다. 양이 안 찬다면 한 봉지는 싸가면 된다. 그러나 싸가는 순간 그 순대는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렌지에 데운다고? 그것도 별로 맛없다. 순대는 길거리에 앉아서, 서서 오가는 사람 봐가며,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 진미다. 그 풍광의 맛, 그 정경의 맛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집 순대가 맛나다고 사오라고 하지만 싸가보면 그것도 별반 맛이 없다. 스티로폼 도시락에 담겨 시장을 벗어나는 순간, 그곳의 풍경이나 정경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저 순대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귀챃더라도 직접 발로 걸어서 순대집에서 사 먹어야 한다. 거기서 먹는 맛이 진짜 순대 맛이다. 인상 좋은 할매가 파는 순대가 더 맛있겠지 하는 생각은 꽝이다. 순대 파는 할매는 갸날플 수도, 퉁실 할수도, 고울 수도 억셀 수도 있는거다. 좋은 맘으로 보면 다 좋게 보이는 것처럼, 순대에 몰입하면 된다. 한쪽 집 순대가 더 맛난 순대는 아닌 거다. 허니, 그쪽으로만 가면 반대편 순대집 할매는 배고프다. 국민화가 박수근이 그랬던가, 과일을 사도, 이 집에서 사과를 샀으면 배는 다른 집에서 사줘야 한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그렇게 사야 서로들 배고프지 않다고 말이다.
여튼, 순대를 싸가지고 갈 생각은 말아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그건 순대 맛을 모르는 거다. 넉넉하게 아니면 짧은 시간이라도 좌판에서 설겅설겅 써는 것을 하나씩 집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할매의 순대 써는 속도보다 입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도 말이다. 뭐든 음식은 바로 해서 먹을 때 맛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도 마찬가지. 어느 시장 골목이건 순대집이 있는 게 아니다. 좌판에서 도마에 써는 순대를 파는 곳 그리 많지 않다. 언제까지 그 집이 그곳에 있겠나. 그 할매들 가버리면 아마 그 풍경도 사라지겠지. 허니, 순대를 싸다달라고 부탁도 하지마라. 조금 귀찮더라도 가서 길가에 서서 먹어라. 그게 순대의 맛이고, 당신이 찾고자 하는 맛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