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뭉클과 울컥 사이
황숙자 (시인)
[경일칼럼] 뭉클과 울컥 사이
황숙자 (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6.12.27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물이 화가 나서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요약되었다.

민주공화국의 시대에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 슬픈 백성도 없다는 것이다.

울분과 상실감에 사로잡힌 한 해가 어수선하게 지나간다.

국민이 지켜주지 않는 권력은 결국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우리는 촛불 광장에 모이지 않았다”고 후려치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부패한 구조적 고질병들을 잘라내고 정말로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물질주의에서 인간회복주의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거리의 밴드가수는 새마을이 아니라 옛 마을로 돌아가자는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겨울 광장을 뜨겁게 데우는 저 환한 촛불의 마음들이 새해에는 역사의 등불로 안착되기를 바란다.

부디 속죄와 참회의 한 칸 위안을 건너 저 강물 속으로 흘러서 홀가분한 삶이 되기를.

소란스러운 세상사 속에서 어쩌다 온전히 주어지는 시간, 따뜻한 커피가 든 보온병과 읽고 싶은 책들을 쌓아 놓고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나에게는 안정과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런 날에는 격문이 아닌 나즉나즉 시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쓴 시들을 모아서 20여년 만의 첫 시집을 내면서 나는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흘러가는 것에 뭉클 한다/한번 울다 가는 바람인 것을 잠시 잊었다/내 그림과 시의 발원/그리운 그림이 가고/사무치는 시가 남았다/겨울 햇살이 말갛고 쨍하다/내 삶이 늘 이만큼만 울컥 했으면 좋겠다.

시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두고 목이 메인다.

지금 삶의 한가운데에서 뜨거움으로 있는 것은 뚜벅뚜벅 그렇게 걸어온 오늘이 여기에 닿았기 때문이다.

말년 휴가를 나온 아들과 함께 고아원 봉사를 다녀왔다. 아장아장 어린 아이들은 정이 그리워서인지 처음 보는 군인 아저씨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불편하게 여기던 아들은 금세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꼭 안아주었다.

복중에 복은 인연복이라더니 결국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사람이 우선이어야 하지 물질이 우선이라면 끝내 불행의 배를 타고 말리라.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는 것.

찬바람에 배배 꼬인 젖은 물기 같은 죄는 다 날려 보내고 흥건한 햇살로 지진 그저 밥상 위에 오른 뜨끈한 시래깃국 한그릇 같은 인간적인 뭉클함으로 남기를 바란다.

겨울 벌판에 선 나무들이 결빙의 계절을 대비하여 잎을 버리고 내년 봄을 기약하는 깊은 성찰 같은 울컥함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황숙자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