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8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80)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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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80)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할망구가 뭘 몰라. 제 남편의 영혼까지 움켜쥐고 있는 듯 자신만만하던 호남의 비웃음이 상기되었다. 노파의 목소리는 다시 노인 특유의 근천스러움을 띄며 이어졌다.

“그 눔아 성질이 일 내고 나모 친정하고 발 끊는 거 알면서 애면 소리 많이 하고, 참 오랜만에 전환디 미안시럽소. 사제양반도 아다시피 우리 주엥이 에미가 한 가지 그 진정만 빼놓으모 나무랠디는 없소. 어른 아아 구별할 줄 알고 윗사람 셍길 줄 알고, 요새 젊은 사람들 중에 뽑이라꼬 칭찬 듣고 사요. 나도 지가 대견시럽고 고마바서 저리 나앉으라 소리도 안하는 귀중한 며느리요. 에라, 내가 손자 손에 밥 얻어 묵고 용상에 앉을 것가 싶어서 단념하고 있다가도 생각하모 울컥 심화가 돋소. 술주정뱅이 영감 밑에서 복날 개 맞드키 맞아 감서로도 도망 안가고 내가 뭘 믿고 살았것소. 우짜자꼬 아들 하나 키운 끝이 무시 빼 묵은 자리가 되는기요. 우리는 인자 손도 없고 문 닫게 됐소. 주엥이 저거 있다 캐도 딸자슥이 친정 조상 모시겄소. 주엥이 이모, 내가, 이 늙은이 두 손 두 발이 다 닳도록 빌꺼이까네 제발 우리 주엥이 에미 좀 잘 알아듣기 타일러서 보내주소. 요새는 의술이 하도 좋아서 찌지 놓은 애기집도 이사 주모 다들 애기 낳는다 카더마…. 주엥이 이모, 우리 이리 전화로나마 만낸 것도 연대가 우연히 맞았는갑소. 제발 우리 주엥이 에미 마음 좀 돌리게 해주시소. 내가 이리키 비요. 이 늙은이 말로 좀 귀담아 듣고 잘해주모 내 이 늙은 머리카락을 다 뽑아서 신을 삼아 돌라 캐도 그리 하것소. 이 늙은 것 낯짝을 봐서라도 제발 저바리지 마시소”

여기, 내 앞에 나타나거든 꼭 그러마고 약속해 놓고 전화를 끊었다. 세상살이란 바른 금을 그을 수만 없는 것. 수화기를 거는 손길이 쇠몽둥이처럼 무거웠다. 호남의 입을 통해 들을 때는 신선하고 선구적이던 호남의 행동들이 주영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으니 또 주영할머니의 주장은 그대로 저저이 옳다.

‘영감탕구가 주영이 아빠 사무실로 산부인과 병원비 얻으러 왔더란다. 조금치라도 자식 체면을 생각한다모 그리 몬할 거 아이가. 참말로 미치고 팔딱 뛰겄다. 명색 아부지라카는 사람이 그걸 와 모리꼬.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참말로 콱 이 세상 폭발이라도 해삐맀시모 좋겠다’

불씨의 속성은 늘 쏘시개만 던져지면 치솟게 되어있다. 그 불씨는 또 엉뚱한 파장으로 애맨 사람을 태우며 번져간다. 어디선가 빗맞은 참나무 장작처럼 되퉁스럽게 툴툴거리던 호남의 음성이 들렸다.

양지는 전화통을 짚고 잠시 멍한 상태로 서있었다. 힘을 얻어 보려다가 오히려 있는 힘마저 앗겨버린 허전함이 가슴의 빈곳으로 밀물처럼 점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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