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거리에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수많은 자전거가 도로 한가운데 얽히고설켜 북새통을 이루고, 길거리 곳곳에는 널브러진 좌판 음식들로 가득했습니다. 눈길은 갔으나 손길은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위생적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길바닥에는 꽁초와 휴지가 나뒹굴었습니다. 그 생활상이 우리의 60, 70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이 불과 20여년 만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으니 참 놀랍습니다. 대한민국도 중국 못지않은 저력을 지녔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근면, 자조, 협동’으로 기틀을 다져왔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되돌려 돌아본 50년 전 세상, 옛것을 들춰보며 기억 저편에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집자주
1964년 12월 4일 금요일(1면) 진주의 병·의원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에 진주지역은 그나마 환자들을 치료하기에 형편이 나았습니다. 명망 있는 병·의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통이 편리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이용하기에 편리했습니다. ‘대동의원’과 ‘金閏陽 外科病院’, ‘金一齒科醫院’ 등은 지역의료의 중심이 되어 환자들의 아픔을 덜어줬습니다. ‘公務員年金療養機關’이란 간판을 내건 김윤양 외과병원이 눈길을 끕니다.
[경남일보 그 때 그 시절, 그때 그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