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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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연지사 종을 보는가
스님이 비쩍 마른 몸매처럼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예나 이제나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훨훨 떠다니는 불제자에게, 무슨 신분이 있고 무슨 이름이 필요하겠습니까마는, 그저 불가에서는‘보묵(甫默)’이라고들 하지요.”

술명과 박씨가 가슴 깊이 새겨두려는 듯 동시에 되뇌었다.

“보묵 스님!”

“마침 여기 오셨으니 종이나 한번 보시지요. 빈승도 실은 그 종이 좋아 이곳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고 있답니다. 이것도 불제자가 멀리해야 할 욕심이라면 욕심이거늘.”

“벌써부터 보고 싶었는데, 정말 잘되었습니다.”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요. 소원을 말해 보라는 것 같지 않나요?”

반가운 목소리의 술명과, 호기심 많은 처녀같이 들뜬 표정을 하는 박씨, 그들 부부 말에 빙그레 웃으며, ‘가시지요.’ 하고 보묵 스님은 등을 돌렸다. 부부는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절집에서 키우는 개인 듯한 크고 새하얀 털을 가진 진돗개 한 마리도 그들을 따라왔다. 절집에 있는 개가 대부분 그렇듯이 그 개도 아주 온순하여, 삼라만상이 모두 불성(佛性)이란 말을 실감케 했다.

이윽고 대웅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종각에 다다랐다. 공교롭게도 그 누각 뒤편은 대나무 숲이었다. 그것을 보자 부부는 또다시 어떤 계시를 접한 듯 가슴이 뛰었다. 금방이라도 조운이 드디어 성공했다고 소리치며 그 속에서 달려 나올 듯했다.

그러나 그런 느꺼운 감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종각에 들어 거기 달아놓은 큰 종을 대하는 순간, 부부는 그만 숨이 턱 멎는 듯한 느낌이었다. 막연히 얘기로만 듣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뭐라고 할까,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세월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고나 할까.

“잘 보십시오. 이런 종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으니까요. 세계적으로도 그럴 겁니다.”

보묵 스님 음성도 감격에 겨운 듯 흔들려 나왔다. 방황과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이른바 득도(得道)에 다다른 듯한 얼굴이었다.

“조운이가 하늘을 날 때, 이 종소리도 허공 가득히 울려 퍼질 것입니다.”

부부는 자신들도 모르게 눈을 감고 합장하며 입으로 부처님을 찾았다. 뒤돌아보면 정녕 얼마나 빌고 또 빌어왔던가. 숱한 실패에 자식이 힘들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이제는 지쳐버린 그들이었다. 이웃집 둘님이 아니면 조운은 어떻게 돼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광녀로 인해 조운과 둘님이 어떤 갈등과 곤경에 처해 있는가는 자세히 모르는 그들이었다. 그저 미친 여자 하나가 조금 성가시게 하는 거겠지 여겼을 뿐, 그 광녀가 온전한 정신과 신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물적인 성애에 목이 마른 나머지, 동정심에서 연을 준 조운에게 남녀로서의 감정을 표출하고 조운과 둘님의 사귐을 광적으로 훼방 놓고 있을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날 조운이 비행기구를 제작하는 공터에서 광녀에게 머리채를 낚아 채인 후유증으로 둘님이 얼마나 큰 충격에 빠져 있는가는 더더욱 알 턱이 없었다. 그 한 번만으로 그치지 않고 광녀가 둘님을 볼 때마다 여자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광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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