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먹어 볼품없어도 건강밥상 '일등공신'
벌레 먹어 볼품없어도 건강밥상 '일등공신'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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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배추 수확
절기상으로 대설이 엊그제 지나갔다.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에 눈은 내리지 않고 중국으로부터 날아 온 미세먼지 파동을 겪었다. 방송에서는 미세먼지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외출이나 운동을 삼가고 바깥 활동을 할 때는 마스크를 쓸 것을 권했다. 다행이 우리지역은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정도는 아니어서 활동에 제한을 받지는 않았다.

대설에 큰 눈이 내려야 풍년이 든다고 했다. 벼를 수확하고 보리와 밀 등 월동작물을 재배할 때 눈이 내려 이들 작물을 덮으면 보온역할을 해 동해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부들의 바람처럼 대설에 큰 눈이 내리는 해는 무척 드물었다. 우리지역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도 전이라 대설에 눈보다는 겨울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한창 김장철이다. 주말 시장은 배추와 무 등 김장거리를 팔고 사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 점심과 저녁 반찬은 이웃집에서 가져 온 생김치가 빠지지 않는다.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던 옛날에는 여럿이 모여 김장을 하고 생김치를 한 포기씩 이웃에 나누어 맛을 보게 했다. 지난주에는 우리의 이러한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지난여름 고구마를 캐내고 심었던 배추를 수확했다. 처음 200포기의 모종을 구입해 심었다가 멧돼지가 파헤쳐 놓는 바람에 두 번이나 보식을 했다. 첫 추위가 닥쳤던 보름 전에는 배추가 얼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두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터라 한동안 벌레가 기승을 부려 애를 먹기도 했다. 벌레는 날씨가 추워지자 사라졌지만 겉잎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춧잎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배추는 속잎이 나오며 속이차고 포기가 자라는 지라 벌레가 갉아먹고 배설물에 더럽혀진 잎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같은 밭에 심은 배추도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잘 자라 속이 차고 포기가 큰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속이 차지 않아 겨울초처럼 잎이 바닥에 퍼진 채인 것도 있다. 멧돼지가 피해를 입혀 늦게 보식한 포기는 속이 제대로 차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배추수확은 큰 포기만 하고 나머지는 두고두고 필요할 때마다 도려와 쌈으로 또는 겉절이를 먹자며 그냥 두었다. 수확한 배추는 칼로 벌레 먹고 더러워진 잎은 떼어내 집에서 바로 소금 간을 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밭에서 처리를 마치니 김장 쓰레기도 발생하지 않고 무게도 가벼워 운반하기도 좋았다. 수확한 배추포기도 너무 크지 않고 알맞게 자라 반으로 자르면 될 정도였다. 모두들 배추를 보고 속이 알맞게 차 김치를 담그면 맛있을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

수확한 배추는 바로 소금을 뿌려 염장을 해 하룻밤을 재웠다. 다음날 염장한 배추를 건져 물을 뺀 후 준비한 양념으로 이웃의 도움을 받아 김장을 마쳤다. 남자인 내가 할 일은 무거운 물건을 옮겨주고 김장 후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전부였다.

배추밭 주변에 뿌렸던 당근이 자라 뿌리를 내렸다. 8월말에 씨앗을 뿌렸는데 여름 가뭄 때문에 발아한 당근이 실낱처럼 자라지 못하고 한 달 넘게 그대로였다. 그러던 당근이 가을비를 맞고 자라 당근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크게 자라기를 바라며 수확을 미루어 왔는데 강추위가 닥칠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우선 큰 뿌리만 뽑아 왔다. 당근은 올해 두 번 수확할 수 있었다. 봄에 뿌려 여름에 뽑아 가을까지 이용했고 늦여름에 뿌린 씨앗을 지금 수확했다.

김장과 함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메주 쑤는 일이다. 메주를 쑤는 것도 때가 있어 농사일을 끝내고 한가해지는 대설을 전후하여 하던 일이다. 장을 귀하게 여기던 옛날에는 메주를 잘 만들어야 한 해의 밑반찬이 되는 장맛을 제대로 낼 수 있기 때문에 콩을 삶고 띄우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콩 농사를 짓지 않아 메주를 쑤기 위하여 해마다 메주콩을 사야 했는데 올해는 농협에서 나누어 준 콩을 이용했다. 하루 종일 시달려야 하던 메주콩 삶는 일도 떡집에 맡겼다. 가마솥에 메주를 쑤고 군불을 때 띄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차츰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다. 떡집에서 삶아 온 메주를 말리고 띄우는 일은 경험이 많은 어머니의 몫이다.

김장을 하고 메주까지 쑤자 겨울 날 채비는 마친 셈이다. 들에 나가도 자라는 농작물이 없으니 바쁠 것이 없다. 지금부터 느긋한 마음으로 한해를 되짚어 보고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정찬효 시민기자

배추수확
초보농사꾼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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