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신’과 비정규직 여성의 현실
‘직장의 신’과 비정규직 여성의 현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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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드라마 ‘직장의 신’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식품회사 와이장 그룹의 계약직 사원 미스 김 이야기이다. 회사나 상사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일하는 이른바 자발적 비정규직인 수퍼 갑 미스 김. 그녀는 124개의 자격증을 가진 ‘만능 파견직’이다. 극 중 미스 김은 오후 6시 ‘칼 퇴근’하고 시간 외 수당은 꼬박꼬박 챙긴다. 또 계약서에 없는 일을 지시하면 계약서를 들이밀며 거부한다. ‘주 5일 근무, 계약연장은 일절 없고 출근 오전 9시, 휴일근무와 야근 제로’라는 ‘미스 김 사용설명서’를 바탕으로 한 미스 김의 당당한 회사생활은 보는 이를 통쾌하게 한다.

그래서 ‘회사는 교회가 아닙니다’, ‘점심시간이 됐습니다만’, ‘너를 위해 일하라’ 등 극 중 미스 김의 대사들이 직장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비정규직 미스 김의 이 비현실적 당당함을 통해 이 시대 고달픈 회사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실제 오늘의 비정규직의 현실에 근접한 인물은 오히려 정주리이다. 정주리는 출입증 대신 사원증을 목에 건 정규직이 되기 위해 늦은 밤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꿈을 꾼다.

그러나 드라마와 현실은 차이가 있어서 오늘의 비정규직 여성은 미스 김처럼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칠 수도 없고, 정주리처럼 개인적으로 노력해도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여성들의 사회적인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었고 일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노동환경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고 많은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대부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노동시장 내의 인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성노동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서 여성노동력의 비정규직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집약적 산업, 서비스업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로 여성노동력을 특별한 근로계약 없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2. 8.)를 분석한 김유선의 글을 인용해 본다면(‘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2012년 8월 현재 남성은 정규직이 617만 명(60.9%), 비정규직이 396만 명(39.1%)으로 정규직이 많지만 여성은 정규직이 309만 명(40.6%), 비정규직이 452만 명(59.4%)으로 비정규직이 많다.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 할 때 여성 정규직 임금은 67.2%, 남성 비정규직 임금은 52.8%,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40.3%로 격차가 클 뿐 아니라 구조화되어 있다. 이는 성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비정규직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정규직 중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은 것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이에 의한 성별 직무분리 그리고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한 노동시장의 성별 분리구조는 여성의 취업이 전반적으로 제한되는 사회적 풍토에서 흔히 여성의 역할이라고 인식되어온 업종 및 직무에 여성을 집중시키는 한편 이런 여성의 노동에 낮은 가치를 부여하여 성별 임금격차를 초래한다. 여성들은 특히 30세 이후 결혼,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관리사와 요양보호사, 조리원, 돌봄교실 선생님 등 특수고용 종사자들은 고용불안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복리후생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으며 급식소 등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은 만성질환에도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2012년 경남여성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대상자 448명 중 88.6%가 근골격계 증상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에서 치료시기를 놓치면서 질병이 만성화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성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 수준에서 비정규직의 근로조건과 고용 안정성을 개선하는 동시에 정규직 여성의 출산, 육아기 고용유지율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지자체 수준에서도 비정규직 여성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관심과 해결의지를 보여야 한다. 지역여성단체들도 이들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욕구가 반영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혜숙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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