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축구협, 적극 추진 의사…市 의지 달려
축구의 도시로 자부하는 진주시가 배출한 천재축구인 고(故)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 이전이 점차 가시화 될 전망이다.
8일 진주시 축구협회는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를 진주시와 협의를 통해 전국체전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된 진주종합경기장으로의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하성 협회장은 “축구의 도시 진주시가 배출한 천재축구인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는 진주축구의 상징인 진주종합경기장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시와 협의를 거쳐 빠른 시일내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정환 선생은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축구국가대표로 참가, 한국축구 최초의 올림픽 8강 진출을 견인한 진주가 낳은 축구인이다.
진주농고(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을 거쳐 당시 국내 축구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고난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진주농고 재학 시절엔 모교를 늘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진농 축구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을 뿐만 아니라 진주가 축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는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천재요절’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선생은 1953년 39세의 한창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는 지역 축구인들은 혜성같이 왔다가 사라진 축구계의 별, 이후 한 세대가 지나 서독에서 활약한 차범근보다 한수 높은 평가를 내릴 정도로 불세출의 축구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선생이 타계한 지 30여 년 만인 1981년 진주축구동우회, 진농 동창회, 고려대학교 교우회가 합심해 신화로만 남아 있던 그의 축구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는 해방 이후 체육인을 대상으로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전국 최초의 기념비라는 것이 지역 체육인들의 전언이다.
선생의 기념비는 현재 진주공설운동장 3번 출구 인근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곳은 오가는 시민들의 발길도 뜸한 외진 곳으로 진주축구의 상징인 종합경기장으로 조속히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황동간 진주시축구협회 고문은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도 조그만한 활약을 한 선수들을 영웅으로 격상시켜 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황 고문은 “가까운 일본도 최초의 분데리스가 진출을 한 선수를 우상화 하면서 일본 축구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는데, 진주 축구를 빛낸 위대한 축구인,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가 시민들의 발길조차 뜸한 곳에 있다 보니 선생의 업적이 너무 빨리 잊혀져 안타까웠다”면서 “진주축구 정신이 들어있는 우정환 선생의 비를 조속히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해 그의 업적에 대해 시민들로부터 재평가를 받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정환 선생이 64년 전 못다 이룬 올림픽 메달의 꿈은 노흥섭, 고봉우, 조광래, 김진용, 백진용을 거쳐 남태희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하며 진주축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8일 진주시 축구협회는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를 진주시와 협의를 통해 전국체전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된 진주종합경기장으로의 이전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하성 협회장은 “축구의 도시 진주시가 배출한 천재축구인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는 진주축구의 상징인 진주종합경기장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시와 협의를 거쳐 빠른 시일내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우정환 선생은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축구국가대표로 참가, 한국축구 최초의 올림픽 8강 진출을 견인한 진주가 낳은 축구인이다.
진주농고(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보성전문(현 고려대학교)을 거쳐 당시 국내 축구계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고난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진주농고 재학 시절엔 모교를 늘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진농 축구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을 뿐만 아니라 진주가 축구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는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천재요절’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선생은 1953년 39세의 한창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는 지역 축구인들은 혜성같이 왔다가 사라진 축구계의 별, 이후 한 세대가 지나 서독에서 활약한 차범근보다 한수 높은 평가를 내릴 정도로 불세출의 축구 선수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선생이 타계한 지 30여 년 만인 1981년 진주축구동우회, 진농 동창회, 고려대학교 교우회가 합심해 신화로만 남아 있던 그의 축구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 기념비는 해방 이후 체육인을 대상으로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전국 최초의 기념비라는 것이 지역 체육인들의 전언이다.
선생의 기념비는 현재 진주공설운동장 3번 출구 인근에 자리잡고 있지만 이곳은 오가는 시민들의 발길도 뜸한 외진 곳으로 진주축구의 상징인 종합경기장으로 조속히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황동간 진주시축구협회 고문은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국가들도 조그만한 활약을 한 선수들을 영웅으로 격상시켜 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황 고문은 “가까운 일본도 최초의 분데리스가 진출을 한 선수를 우상화 하면서 일본 축구발전의 모델로 삼고 있는데, 진주 축구를 빛낸 위대한 축구인, 우정환 선생의 기념비가 시민들의 발길조차 뜸한 곳에 있다 보니 선생의 업적이 너무 빨리 잊혀져 안타까웠다”면서 “진주축구 정신이 들어있는 우정환 선생의 비를 조속히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해 그의 업적에 대해 시민들로부터 재평가를 받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정환 선생이 64년 전 못다 이룬 올림픽 메달의 꿈은 노흥섭, 고봉우, 조광래, 김진용, 백진용을 거쳐 남태희가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하며 진주축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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