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가을 열매 같이
성공은 가을 열매 같이
  • 경남일보
  • 승인 2012.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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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우리 모두 가을 길을 걸으며 자신의 소리를 들어보자. 지난 봄, 지난여름, 화려하고 요란스런 풍경에 홀리어 떠나고 싶었던 생각들이 가슴속으로 들어오도록 가을 길을 걸어보자. 극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만 추억은 아름답고 회상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실로 찬란한 보물을 가지고도, 꺼내 보며 감상할 줄 모른다 해도 소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이도 있겠지만, 하찮은 그 무엇을 가졌어도, 꺼내보며 닦으며 매만지고 즐길 줄 안다면, 그야 말로 아름다운 보물을 소유했음이 아니랴.

추억이란 것도 매 한가지. 별것 아닌 지난날이라도 자주자주 떠올리며,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변모를 이리저리 생각하며 때로 후회하고, 때로 용기 얻고, 때로 음미하고 때로 다짐한다면, 그 추억이야 말로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랴. 가을이 정녕 추억의 계절이고 시의 계절이라면, 손으로 벼이삭을 쓸어보며 나락 몇 알을 까먹으면서 들길을 지나 호젓한 길도 걸어보자. 가을바람은 가을들풀을 쓸며 불어왔다 불어가고, 그 바람에 마셔보는 들풀들의 향기, 길섶에 핀 들국화를 보면서 가을 내음에 취한 채 아무것도 탐내지 않고 그 무엇도 미워하지 않으며 모두를 사랑하자. 쓸쓸한 곳에 청초하고 담백하게 피어있는 하얀 구절초 같은 정갈하고 서늘한 자국도 남겨보자.

서리 칠까 겁내며 웅크린 해질녘, 무, 배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밭두렁 길도 걸어 보자. 이 모두가 우리들의 그리움이었고 순수하고, 아름답고, 꾸밈없는 고향이며 과거요. 배경이 아닌가. 그래서 가을 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걸까? 마른 풀을 태우는 매운 연기 인양 코끝이 아리고 눈시울이 더워오고, 가슴복판 어느 자리엔 작은 샘물처럼 슬픔이 고이는 듯. 가을 길을 걸으면 왜 말이 없어지고 발걸음은 한결같이 고르게 놓여지고, 눈길은 가슴속을 샅샅이 살피는 걸까?

아직도 그 어디에 헛된 야망이 남아있나? 아직도 그 어디에 탐욕이 숨어있나? 아직도 어느 갈피에 쓰디 쓴 패배와 좌절과 절망에 젖어 있단 말인가? 샅샅이 살피는 불빛처럼 자신을 정화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게 하는 듯. 눈물은 언제나 마음을 씻어 주기 마련이거늘. 가을 길을 걸으면 시인이 되고 그래서 마음은 씻겨 지느니, 초라해도 정직한 우리들의 모습으로 마치 서리 내려 잎 진 가을나무의 앙상한 모습처럼, 그렇게 우리들은 돌아가느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우리들의 가슴속을 걸어 들어가는 듯, 들어가서 조용히 살펴주는 듯, 가을 길을 걸으며 우리들의 마음을 뵈어 드리자.

산길을 걸을 땐 스님이 된 듯 탈속(脫俗)의 기쁨에 만사를 잊고서, 탐욕과 야망의 잎새를 털어버린 가을 나무처럼 욕심이 여위는 듯, 가을 산길을 걸어보면 안쓰럽고 별 볼일 없는 인생길도 새로워지리라. 오르지 감사하고 싶도록 겸허해진 채 우리 모두 가을에는 걷고 또 걷자. 어느 거리 어느 길이라도 걷다보면 제자리에 깃드는 제 모습이거늘, 제 모습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들으며 가을날, 가을오후, 가을저녁엔 아니 이 가을이 다가도록 가을 길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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