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범 (창원시의원)
“야, 이놈아! 냉수에 밥 말아 먹고 정신 좀 챙겨라.” , “야, 저 친구 저 양반 밥맛이다.”
배 고파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밥 냄새는 고리타분하고 싱거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싸주신 벤또(도시락)를 누구나 한번쯤은 놓아두고 그냥 가서, 그날 점심을 굶고 허기져 녹초가 되고 후회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침에 알루미늄 도시락 뚜껑을 살짝 열어보고 보리가 쌀보다 훨씬 많을 때면 으레 가지고 가지 않았다. 친구들 보기 창피해서 그랬을 것이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밥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쌀밥이야말로 어릴 적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옛날 쌀이 귀하던 시절 보리쌀을 먼저 삶아 대소쿠리에 많이 해 담아 놓고 매끼 밥을 할 때마다 솥에 물을 붓고 보리쌀을 먼저 깔고 그 위에 쌀을 조금 얹어서 밥을 했다. 밥을 다해서 밥상에 올려 놓을 때는 아버지 밥그릇에 보리쌀을 조금 섞어 그 위에 흰 쌀밥을 담고 나면 어머니와 우리들은 거의 흰쌀이 많이 섞이지 않은 보리밥이다.
밥상은 따로 차려진다. 아버지 밥상, 식구들 밥상. 매끼 식사 때마다 아버지의 밥상에 놓인 흰 쌀밥 그릇은 곁눈질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행운이었다. 귀하게 낳은 아들이다 보니 아버지는 항상 자기 밥상으로 옮겨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시면서 흰 쌀밥을 몇 숟가락 퍼 주신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진학해 공부할 때다. 꽤나 잘사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 친구집에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데 밥그릇이 유난히 작게 보였다. 보통 밥그릇의 절반밖에 안될 것 같았다. 흰 쌀밥 한 그릇을 후다닥 먹었다. 한참 먹을 때라 양이 차지 않았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더 먹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같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밥상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용기 없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배고픈 하루를 보냈다. 이제 내 나이 오십이 넘어 나에겐 아내와 딸과 아들 네 식구가 있다. 네 식구가 먹는 한달의 쌀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와 직장 다니는 딸아이는 아침을 잘 먹지 않고, 아들은 기숙사 생활하는 탓에 주말이라야 오고 아내혼자 식구 없는 식탁에서 아침 몇 숟갈이 고작이다. 저녁 역시 손님 만난다는 핑계로 매일 늦게 귀가하니 쌀 소비가 될 수가 없다.
그렇게 귀하고 먹고 싶었던 쌀밥이 요즘은 경시당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세태인 것 같다. 한여름 날이 더우면 식욕이 떨어진다. 끼니 때마다 무얼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어떤 때는 자다가 일어나 밥상 앞에 앉아 끄덕끄덕 조는 것처럼 당최 먹는 일 자체가 싫어질 때가 있다. 오늘 점심을 먹고 친구한테 안부전화 겸 “잘 있소, 밥은 먹었능기요?” 친구 왈 “아이구 더워서 밥맛도 없고 뭘 먹을까 생각중이요”라는 말이다. “밥맛 없으면 물에 말아 묵어소” 하고 안부전화를 했다.
우리가 어릴 때 어른들은 배탈 날까봐 찬물에 밥 말아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식욕이 나지 않으면 밥에 물을 붓는다. 보통 ‘물밥’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물밥은 굿을 할 때 무당이 귀신에게 준다고 물에 말아 던지는 밥을 말하고, 제사 때에도 마지막에 물밥을 만들어서 집 대문 옆에 놓아 두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물에 말아 먹는 밥은 몇 번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간다.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다. 텃밭에서 따온 적당히 매운 고추 몇 개만 있으면 된다. 밥 한술 뜨고 된장에 찍은 고추 깨물고 입안에 도는 매운맛 달래기 위해 또다시 밥 한술 뜨다 보면 어느새 빈 그릇이 된다.
여름철 먹는 것도 부실하고 뱃속 역시 좋을 리는 없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힘쓸 리도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어른들은 물에 밥 말아 먹는 머슴이나 일꾼은 절대 두지 말라고 했던가. 요즘같이 먹을거리가 많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이 마당에 여름철 한끼 밥맛 없을 때 우리들의 어린 시절처럼 물에 밥 말아서 풋고추와 된장의 한끼 식사도 괜찮을 성싶다.
강용범 (창원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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