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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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4.07.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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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손국복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보이저 통신』을 읽다(2)
손 시인의 시집 『보이저 통신』은 45년간 보이저1, 2호에서 보내온 행성 간의 비밀이나 풍경, 또는 지구를 보고 찍은 것들에 대한 인상 같은 단상이나 상상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우리 사는 지구도/ 한 점 콩알/ 창백한 푸른 별/ 그 속에 바삐 시간을 쪼개고/ 공간을 나누어/ 밥그릇 앞에 놓고/ 그나마 연명하는 목숨/ 혼자 잘 살겠다고 / 훔치고 때리고 죽여/ 피바다 만드는 행성/ 용광로 깊은 화산/ 백악기 말 행성 충돌…”(「보이저 통신 2」에서)

잘 들여다보면 지구가 한 점 콩알 푸른 별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콩알’에 관한 지구촌 인간들의 찌지고 볶으며 사는 한없는 각축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진술은 끝에서 지구 보존의 가치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보이저 통신 3」은 부제가 <한 순간>이다. 우주 광대의 별과 별 사이에서 보면 인간세상이 참으로 왜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인간들 삶의 무게가 먼지이거나 허공,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것 아닌가.

“뛰지 마라/ 싸우지 마라/ 마라 마라 마라 제발/ 먼지야 공이야/ 돈도 명예도 사랑도/ 찰나야/ 투탕카멘 황금가면/ 엘리자베스 권좌도/ 한 순간/ 머스크 버핏 빌 게이츠/ 주식도 휴지조각…” 어떤 권좌도 재력도 한 순간이라는 것, 우주 무변의 공간에서 보면 작은 별 지구 그 안에서 무한연대 영구 권력이 먼지요 공인 것을, 아마도 손국복 시인은 불가에 인연이 있어 보임으로써 ‘諸行無常’이라 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저 통신5」는 천명(天命)에 대해 생각하며 가슴 속에 별 하나 간직하고 사는 것이 천명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마음 속에/ 별 하나 품고 살지/ 빨강 파랑 보라/ 그리움 안고 살지…길은 여러 갈래/ 선택이든 딸려가든/ 멀리 보면 천명이라/ 아쉬움 가득한 매순간 순간 순간들이/ 회한의 별빛으로/ 스러지는 밤”

이 시를 읽으면 윤동주의 「쉽게 씌어지는 시」가 떠오른다. “창밖에 범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바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천명은 슬픈 것인가, 별이라는 것도 회한에 젖는 것이니 보이저의 그 과학적 설계 안에서도 애잔함이 서리는 듯하지 않는가.

「보이저 통신 6」에서는 부제 <홍매화>를 만나게 된다. “봄 뜨락에 별/ 홍/매/화/ 언 가슴에 볼/ 따습다/ 눈부시다” 아마도 보이저호에서 지구의 한쪽에 오는 봄을 그리워하며 지리산 화엄사에 피는 홍매화 붉은 꽃떨기를 보며 향기에 젖고 있는지 모른다.

손시인은 이 시집의 정서가 아득한 성간 여행인데도 종횡무진 참으로 다양한 주제의 시편들을 쪼물락 쪼물락 늘이고 줄이고 높이고 낮추고 천변만화 요술 방방이를 휘두른다.

손국복 시인은 이 정도 보이저통신으로도 합천의 운석충돌구라는 우주적 주제를 나름 소화해내고 있다. 때맞추어 사천에서는 우주항공청 개설로 바야흐로 우주항공시대를 열고 있지 않은가. 그 연동적 효과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또 손국복이라는 시인이 ‘보이저 통신’으로 시단의 중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 시인이 동일 주제 연속의 시편들을 내면서 시적 역량에 날개를 다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도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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