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과수원지기가 된 백화점 마네킹
[현장칼럼] 과수원지기가 된 백화점 마네킹
  • 경남일보
  • 승인 2024.07.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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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창원총국 취재부장
이은수 창원총국 취재부장


2024년 7월의 어느날. 인적이 드문 과수원에 옷을 잘입은 남녀 마네킹이 서있다.

새들을 쫓고 들짐승이 농작물을 망치지 않도록 허수아비가 서 있을 자리에 값비싼 마네킹이라니. 고급 마네킹이 왜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다. 마네킹이 허수아비보다는 사람과 가깝고 확실히 생동감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마네킹은 마네킹이고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로 서로 영역이 다르다.

농장주 말은 이랬다. 몇일전 롯데백화점 마산점에서 마네킹 처분을 도왔다. 마네킹을 가져다 파쇄하고 또 파쇄해도 일은 끝이 없었다. 수십 개를 부순 뒤 팔도 아프고 해서 잠시 쉬다가 멀쩡한 마네킹을 마주하며, 여기에 버리느니 차라리 과수원에라도 갖다 놓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산점 최후의 마네킹은 그렇게 과수원을 지키게 됐다.

진해구 인구보다 1만명 적은 18만명의 마산합포구에서는 더 이상 백화점을 볼 수가 없고, 설자리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백화점에서 마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마네킹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농부의 손에 이끌려 과수원으로 간 마네킹은 달라진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산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백화점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다.

계절마다 멋진 옷을 입고 백화점을 지키며 수많은 고객들을 맞이 했을 마네킹이 산비탈까지 오게 된 것에 뭔가 이상하고 찜찜하다.

코로나19가 지난 뒤 롯데는 전국 롯데백화점 32개소 중 매출이 가장 부진한 마산점 폐점을 결정했다. 인구는 줄고 지역경기 침체 가속화 속에 마지노선으로 통하던 연매출 700억원대 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마산점은 백화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포츠센터를 이용하던 수백명의 회원은 물론이고 백화점 내 갤러리와 문화공간에서 문화예술행사와 전시를 해오던 단체들은 대규모 주차공간과 접근성이 높은 문화공간을 잃은데 허탈해 한다. 어시장 등 마산점 주변은 벌써부터 손님이 끊겨 이대로는 못살겠다며 아우성이다.

백화점이 없어지는 것은 지역경제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창원시는 마산점 폐점에 따른 지역 상권 위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다. 창원시장과 시의회의장은 마산살릴 방법을 강구하고자 도시재생의 교본으로 통하는 일본 도쿄 ‘롯본기힐즈’를 방문한다.

당국은 마산점 폐점 후 매출이 절반 넘게 줄어 하루 두 끼 시장에서 사 먹던 밥도 못 먹는 신세가 됐다는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는 분야별로 △금융지원 △지역 소비 촉진 △고정비를 지원해 위기의 소상공인에 집중해서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피부에 와닿은 실질적인 대책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지역의 새로운 동력을 위해 창원시가 백화점 건물을 인수해 문화·스포츠 복합단지나 원도심 주차단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시의회 간담회에서 마산점 건물을 소유한 KB자산운용 측이 지역주택조합 매각 등 계획을 밝혔지만, 철거하기에는 건물이 아깝기도 하고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인건비와 자재비 폭등으로 건설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철거후 수 년내 새 건물이 들어서지 않는다면 도심 흉물로 전락할 수 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정녕 빠지는 물에 배를 댈 수는 없는 것일까. 30년 영업을 한 원도심의 대형백화점 폐점이라는 위기를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회로 바꿀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창원시 등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전국 7대 도시 마산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가. ‘말뫼의 눈물’은 더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백화점 매장 대신 과수원으로 간 마네킹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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