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아파트 관리비 부담 지우는 법령개정
[경일시론]아파트 관리비 부담 지우는 법령개정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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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기 논설위원
한중기 논설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일 정책브리핑 한 건을 발표했다. ‘이해관계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제기한 의견을 균형 있게 살펴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비용부담이 발생되지 않도록 대상 범위를 정하고, 유예 기간도 충분히 부여하는 등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월패드 없는 아파트에도 정보통신 설비를 다룰 수 있는 전문 기술자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해 쓸데없이 관리비 부담이 커지게 됐다는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서둘러 정책브리핑을 낸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19일 시행을 예고한 정보통신공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 아파트단지는 정보통신설비 전문 기술자를 선임하거나 유지관리업체에 위탁을 맡겨야 한다. 위반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 경우 전국의 1만3000여 아파트 단지는 연봉 3500만 원 이상의 기술 인력을 고용하거나 유지관리업체와 계약을 체결해 용역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아파트 관리비가 연간 50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대한주택관리사협회)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법이 시행되더라도 아파트 관리비는 연간 100억 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과 현격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법령 개정 하나로 국민 부담이 연간 수백~수천억 원에 이른다면 철저한 사전 검토와 공청회 같은 절차를 거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는 ‘아파트 관리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정작 관리비 부담을 초래하는 법령 개정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행태를 종종 보이고 있다. 법령 개정에 따른 비용부담 주체에 대한 해법도 제시해야 옳다. 법령 하나 잘못 고치면 국민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례는 하나 둘 아니다.

해킹 피해 방지를 위해서라면 일정 부분 비용발생 부담을 감수해서라도 전문 기술자를 둬야겠지만, 홈네트워크 시스템 기능이 아예 없는 오래된 아파트까지 일률적으로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문제다. 주택건설기준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사업계획이 승인된 공동주택부터 홈네트워크설비를 갖추도록 했으니 그 이전에 세워진 아파트 대부분은 월패드가 없다.

아파트 지능형 홈네트워크는 세대 내 월패드와 현관문, 조명, 냉난방 등을 원격 제어하는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의 핵심으로 보안강화는 필수적이다. 2021년 발생한 월패드 해킹사건을 보더라도 철저한 보안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적용대상 아파트 중에는 홈네트워크 설비가 없는 곳이 많은 데다 시스템을 갖춘 공동주택에서는 이미 자체관리를 하거나 전문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이중 삼중 중복 규제도 문제다. 아파트단지의 화재경보설비와 비상방송설비는 소방설비법에 따라 전문 기술자가 관리하고 있다. 최근 공포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도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의 관리 대상 시설물에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를 추가하고 월 1회 안전점검 하도록 했다. 중복규제로 인한 업무 충돌 발생 가능성이 많은 부분이다. 비슷한 업무를 여러 법령에 따라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중복규제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자칫 ‘이익단체의 로비에 의한 공무원의 갑질’이란 오해를 살까봐 염려돼서 하는 말이다.

과기정통부가 정책브리핑 내용처럼 1년 전 입법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공청회와 이해관계자의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꼼꼼하게 살폈다면 될 일이었다. 일단 법부터 개정해 놓고 여론의 간을 떠 본 다음 별다른 반발이나 이견이 없으면 그만이라는 사고의 발로 때문 아닌가 싶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를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밀어 붙여서는 곤란하다. 정부정책의 신뢰도 추락은 물론 이로인한 소모적인 국민갈등과 행정력 낭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이제라도 정확한 분석과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서 바로잡아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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