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3]금산 보곡산 산꽃술래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3]금산 보곡산 산꽃술래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5.0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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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의 매혹에 빠져드는 보곡산 산꽃술래길
 
봄꽃 속에 파묻힌 산안마을.
◇산벚꽃 꽃 잔치에 내리는 꽃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사천시 곤양면 서정리 솥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진주로 이사와 청년기까지 진주에서 성장한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의 한 부분이다. 꽃잎이 떨어지는 봄과 이별을 앞둔 연인에게 슬픔 대신 재생의 꿈을 건네주는 ‘낙화’는 국민 애송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낙화의 계절을 맞이해 진주불교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충남 금산 보곡산 산꽃술래길 트레킹(걷기 여행)을 떠났다.

진주에서 2시간 남짓 걸려 충남 금산면 보곡산 산꽃술래길 주차장에 도착했다. 보곡산 산꽃술래길은 1코스 나비꽃길 4㎞, 2코스 보이네요길 7㎞, 3코스 자진뱅이길 9㎞ 총 20㎞나 되는 둘레길이다. 필자는 산꽃술래길 주차장-산벚꽃마을 오토캠핑장-자진뱅이길 입구-보이네요정자·사랑의 연리목-버섯농장-산꽃세상정자-봄처녀정자-300년 산안송-자진뱅이 마을-산꽃술래길 주차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인 자진뱅이길을 걷기로 했다.

‘보곡산 산꽃술래길’, 그 이름이 특이했다. 금산군 관계자와 문화해설사에게 문의해 봤지만 술래길 이름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어 필자 나름대로 그 이름의 유래를 짚어보았다. 보곡산 산꽃술래길은 보곡산 기슭을 한 바퀴 둘러보는 둘레길과 여럿이 함께 즐기는 민속놀이인 강강술래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신조어로써 ‘여럿이 함께 보곡산 산벚꽃 길을 한 바퀴 둘러보는 탐방길’이란 의미를 가진 둘레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산꽃술래길 탐방을 시작했다. 봄바람이 일자 산벚꽃 축제를 하는 행사장과 길 양쪽에 선 산벚나무에서 꽃비가 쏟아져 내렸다. 탐방객에게 건네는 황홀한 퍼포먼스였다.

 
보이네요정자에서 쉬고 있는 탐방객들.
◇꽃멍을 하며 황홀감에 빠져든 산꽃술래길

산꽃술래길 초입 오른쪽엔 ‘홍시야 젊었을 땐 너도 무척 떫었지’, ‘당신이 선 자리 어디든 꽃이 피네, 당신이 가는 길 어디든 꽃길 되네’, ‘봄날은 온다’ 등 좋은 글귀를 새긴 서각을 전시해 놓았는데, 특히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인생이란 무엇인가? 날아가던 기러기가 잠깐 눈밭에 내려와 남긴 발자국과 같으니라’는 뜻의 시구는 낙화 분분한 봄날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건너편 길가, 가로수로 선 산벚나무 사이에는 봄꽃과 사람을 칭송하는 글귀를 한 글자씩 적은 광목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현수막을 전시해 놓았다. ‘꽃을 보면 행복해 그래서 널 보고 있어’, ‘나는 봄이고 그대는 꽃이야’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꽃이 피어나는 길을 걸을 때는 꽃에 취해 다른 것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떨어지는 꽃길을 걸을 때는 인생을 생각하며 걸을 수 있어 그 걸음이 더욱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진뱅이 마을(산안리) 초입에 보곡산 산꽃술래길인 자진뱅이길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 흙길 위에 떨어진 산벚꽃 꽃잎들을 밟으며 걸을 때, 작은 바람결에도 산벚나무에 남은 꽃잎들이 한꺼번에 떨어지면서 술래길을 걷는 탐방객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술래길 양쪽엔 자생하는 산벚나무들이 일정 간격으로 도열해 있었다. 길섶 의자에 앉아 보곡산을 연분홍으로 물들인 산벚꽃과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꽃멍을 하는 탐방객들도 있었다. 낙화의 매혹 속으로 들어가는 상춘객들의 얼굴빛엔 황홀감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얀 조팝꽃과 연분홍 산벚꽃 너머로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활엽수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자진뱅이길 3.5㎞ 정도를 걸어가자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마음선원 힐링센터와 탐방객들의 쉼터인 보이네요정자, 벚나무와 참나무 연리지인 사랑나무가 술래길을 걷는 탐방객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건네주었다.

 
꽃멍을 하고 있는 탐방객들.
보곡산 산꽃술래길에 전시된 서각.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한 꽃대궐 산안마을

보이네요정자에서 산꽃세상정자, 봄처녀정자로 이어지는 술래길엔 제비꽃과 양지꽃, 구슬붕이와 각시붓꽃 등 키 낮은 꽃들이 발걸음을 즐겁게 했다. 국내 최대의 산벚나무 자생지인 보곡산 전체가 산복숭아꽃과 어우러져 흰색, 연분홍, 진분홍 물감을 뿌려놓은 듯해 마치 몽유도원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술래길 길섶에다 시화를 제작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독특했다. 지게 위에다 시화 액자를 전시해 놓은 것도 있고, 벚꽃 모양과 하트 모양의 액자에다 시를 적어서 마치 길 안내판처럼 전시해 놓은 점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산안마을 뒤편에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산안송)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몹시 든든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 초하룻날에 산안송 앞 제단에서 산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산꽃 술래길 상춘객을 칭송하는 글귀.
철학자 강신주 교수는 ‘꽃이 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꽃이 피지 못함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라’고 했다. 모든 꽃은 꽃으로 피었다가 때가 되면 진다. 사람도 누구나 신체적으로 성년인 꽃으로 피었다가 늙으면 세상을 뜬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참된 가치를 발휘한 ‘꽃’으로 피었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은 많지 않다.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한참 꽃멍을 했다. 정녕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의 ‘꽃’을 피운 뒤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자신의 향기와 색깔을 머금은 채 떨어지는 꽃잎들이 거룩하게 보였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낙화 분분한 보곡산 술래길.
봄꽃으로 둘러싸인 마음선원.
봄처녀 정자.
산안마을 입구의 인삼밭.
산꽃 술래길 안내도.
술래길 옆 버섯농원 전경.
술래길 길섶 지게 위로 설치한 시화.
흐르는 꽃잎물에 족욕을 하는 탐방객들.
술래길 길섶 벚꽃 모양의 시화작품.
낙화 분분한 보곡산 술래길.
수령 300년인 산안마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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