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0]동래 금정산성 순례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50]동래 금정산성 순례길
  • 경남일보
  • 승인 2024.02.0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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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에 저항한 동래 주민들의 생명선이 된 산성
◇진주와 함께 임진왜란 최대의 피해지였던 동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이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동래성을 침공했다. 송상현 동래부사와 동래성 주민들이 2시간을 버티며 왜군에게 저항했으나 끝내 동래성은 함락당하고 말았다. 이때 송상현 부사를 비롯해 군민(軍民) 3000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5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2차 진주대첩 때 왜군에 의해 민관군 6만여 명이 학살당한 진주와 함께 임진왜란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동래다. 그 당시 왕과 높은 벼슬아치들은 백성과 나라를 내팽개치고 제 몸 하나 살기 위해 도망을 갔지만, 백성들은 그런 얼간이 같은 왕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임진왜란 첫 번째 대규모 희생지였던 동래성 순례를 위해 명품걷기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금정산성 트레킹(걷기 여행)을 떠났다.

진주에서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순례길 출발지인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범어사-금정산성 북문-고당샘-금샘-고당봉-고모당-북문-산성마을’ 약 8㎞를 순례하기로 했다. 범어사 경내를 둘러본 뒤 곧바로 금정산성 북문을 향했다. 길 초입부터 돌너덜이었다. 너비 70m의 돌너덜이 2.5㎞ 길이로 뻗어있는 돌바다를 따라서 올라갔다. 금정산의 수많은 돌이 현존 국내 최장의 성곽인 금정산성을 쌓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듬한 오르막길엔 온통 덜 꿰맨 돌 융단이 깔려있었다. 휴일을 맞아 찾은 수많은 등산객은 돌 융단길을 따라 산행을 했고 필자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순례길에 올랐다. 밟고 오르는 돌 중에 성곽으로 쓰였던 돌인 듯, 정으로 다듬어 놓은 돌도 있었다. 옛날에 나라를 지키던 돌이 지금은 길바닥에서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었다.

 
금정산 돌바다.
◇국내 최장의 산성인 금정산성

1.6㎞를 올라가자 늠름한 모습의 금정산성 북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금정산성은 그 축조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라시대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측되며, 지금의 성 형태는 임진왜란 때 엄청난 피해를 당한 동래 주민들이 피난 겸 항전을 위해 쌓은 성인데 원래 이름을 동래성이었다. 왜군의 첫 상륙지인 동래는 특히 희생자가 많았던 곳으로 동래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서 성을 쌓은 것이 동래성 즉 금정산성인데 성벽의 길이가 총 1만 8845m로서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긴 산성이다. 일제 강점기 때 왜인들에 의해 훼손당한 것을 1972년부터 보수작업을 시작해 지금의 성곽을 복원했다고 한다.

 
금정산정 북문.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을 향해 뻗어있는 성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지금은 하나의 풍경으로 남아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의 금정산성은 생명선이었다. 늘 약탈을 일삼고 호전적인 왜구로부터 스스로 목숨을 지키려고 했던 동래 주민들에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생명줄이었을지도 모른다. 왜군들이 쳐들어왔을 방향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러다 환청처럼 들려오는 동래성 주민들의 함성에 맞춰 나도 몰래 큰 소리로 ‘공격하라!’라고 외치고 말았다. 속이 후련했다. 사람의 성격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고 하지만 그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땅을 약탈하길 좋아하고 호전적인 본성을 지닌 인간들은 언제 또 그 본성의 이빨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금샘에서 바라본 고당봉.
성곽과 나란히 난 순례길을 따라 고당봉을 향해 800m 정도 올라가자 금샘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다시 400m 정도 숲길을 걸어가자 웅장한 바위들과 함께 금샘이 있는 바위를 만날 수 있었다. 동아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위험한 곳인데도 금샘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큰 바위 윗면에 마치 인공적으로 파 놓은 듯한 샘이 물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신비스러운 금샘 너머로 금정산 자락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금정산이란 이름과 범어사란 절 이름이 금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금샘의 우물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황금색을 띠고 있었으며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황금색 우물 속에서 놀았다고 한다. 금빛 우물의 한자어인 금정(金井)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불렀고, 범천에서 내려온 황금 물고기를 범어라고 하는데 그 금정 아래 지은 절을 범어사라고 했다고 한다.

 
늘 물이 고여 있는 금샘.
고당봉 정상 표지석.
◇고당 할미가 지키는 우리 땅

전설이 담긴 금샘에서 고당봉까지는 20분 정도 걸렸다. 고당봉은 하나의 거대한 돌 봉우리였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모인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고당봉이 부산을 지켜주고 왜적의 침탈을 막아주는 수호신처럼 느껴졌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낙동강 줄기와 부산 북구 시가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당봉에서 조금 내려오자 고모당(姑母堂)이라는 당산이 있었다. 설화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을 함락시킨 왜군들이 범어사를 불태웠는데 당시 불가에 귀의해 있던 밀양 박씨가 범어사의 살림을 맡은 화주 보살이 되어 절을 재건하는 데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고당봉 아래에 사당을 짓고 제를 지내 주면, 죽어서라도 범어사를 지키는 데 힘을 다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주지 스님은 그녀의 뜻대로 장사를 지낸 뒤 고모당을 지어 일 년에 두 번씩 고모제를 지냈으며 이 고당 할미의 이름을 따 금정산 주봉을 고당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북문에서 흙길로 된 순례길을 따라 산성마을 쪽으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고당봉은 당당한 위세로 서 있었다. 어떤 외세든 다 물리칠 기세로 선 고당봉을 바라보면서 내려오는 금정산성 순례길, 마음 한구석이 뿌듯해 왔다.

박종현·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고당봉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부산 북구.
금정산성 랜드마크.
범어사를 품고 있는 듯한 금정산.
북문에서 바라본 성곽과 고당봉.
원효암 가는 길.
북문으로 올라가는 돌길.
북문에서 산성마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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