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12] 여름을 여는 열쇠 (이혜미 시인)
[최광임의 디카시 행진 112] 여름을 여는 열쇠 (이혜미 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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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여는 열쇠 (이혜미 시인)
 
 


순간의 마음을 깃털처럼 어루만질 때

멀리에서 다가오는 결심이 있어

놓아주며 이루어가는 여행처럼

빛의 현관에 도달하는 날개처럼



-이혜미 시인의 ‘여름을 여는 열쇠’



어려서 쓰던 일기장, 혹은 첫사랑과 주고받은 편지, 언제인지, 누구에게 받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선물, 단짝의 증명사진, 몽당연필, 유행 지난 연예인 사진, 연유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서랍 깊숙한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 서랍을 열지 않는 한, 그것들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이었고 더는 내 삶에 어떤 의미도 생성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서랍에 오랜 기간 자물쇠까지 채워두었다. 나에게 ‘내밀’한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내밀’한 것은 과거와도 다른 것이며 현재와도 연관이 없다. 누구나 지니고 있을 그 내밀함의 공간을 개봉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나 현재가 아닌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림이 되고 시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자연도 지난 것과 지금인 것과 다가오는 것을 스스로는 증명할 수 없다. 여름을 열기까지 봄가을 겨울이 내밀한 공간에 쌓여있다가 깃털 같은 것, 여행 같은 것, 날개 같은 것의 열쇠가 풀렸을 때, 한 계절이 열리는 것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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