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대첩광장 조성과 망일헌 복원추진 의미
[경일시론]대첩광장 조성과 망일헌 복원추진 의미
  • 경남일보
  • 승인 2022.04.1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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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위원)
유구한 천년 역사 도시 진주를 충절의 고장이자 문화·예술·교육 도시라는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남강(南江)과 진주성(晉州城)은 진주의 상징이고 문화의 요람이다. 중심에 아름다운 강과 역사적인 성이 같이 있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선조들과 영고성쇠를 함께 해온 강·성은 현재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자연이 준 탁월성의 가치를 잊고 오늘에 살고 있지만 시민들의 젖줄인 강과 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촉석루(矗石樓)는 남북한을 합쳐 3대 누각에 속하는 명루(明樓)이다.

진주성은 1592년 10월 임진왜란 1차 전투 때 3800명의 적은 군사로 왜군 2만 명을 물리친 김시민 장군의 3대 대첩인 진주대첩을 이룬 곳이다. 이듬해 6월 7만 민·관·군이 왜군과 끝까지 항쟁하다 순국한 뼈아픈 역사, 의기(義妓) 논개(論介)의 충절이 서려 있는 곳이다. 경상우도(慶尙右道) 28개 고을의 병마를 총괄한 군사 1만 여명을 거느린 병영이였지만 일제 때 훼손된 된 후 복원이 안 되어 그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남강권 발굴조사에서 구·신석기-청동기-중·근세-현대까지 역사, 문화유산을 소유하고 있는 곳임이 확인됐다. 고려말인 1379년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800보 정도의 작은 석성으로 축성한 성은 1300여 년간의 역사가 공존하는 행정·군사 중심지였다. 조선 성종 때 1만호를 상회하는 진주목(晉州牧)은 전국 6대 거읍(巨邑) 중하나였다. 많은 인구수용과 왜구 침범에 대비, 조선 초기부터 여러 번 성곽이 확장됐다.

진주시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대첩광장조성(1만9870㎡) 착공과 망일헌(望日軒:중영:中營) 복원은 잊혀진 역사·긍지와 자부심·정체성을 되찾는 사업이다. 진주성을 순천 낙안읍성, 고창 고창읍성·무장읍성, 서산 해미읍성 등과 ‘한국의 읍성 도시 협의회’를 구성, 읍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동등재 추진에 기대가 크다. 일제가 허물어버린 진주성은 1차로 지난 1969년 복원·정화사업에 착수, 1972년 촉석문을, 1975년 내성곽의 여장(女墻)부분과 성곽 일부만 복원했다. 2차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민가 751동 철거와 2002년 5월 김시민 장군 동상 건립까지 33년간 일부를 복원·정화했다.

조선 후기 때 20여 진주성도에 있는 민간 시설을 제외한 내·외성에 있던 경상우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종 2품) 집무청인 북장대 앞 관덕당(觀德堂:운주헌:運籌軒:구한말 선화당:宣化堂) 등 헌(軒)·누(樓)·당(堂) 등 군사시설을 비롯, 역사성이 있는 문화유산 139동이 있었다. 현재 성 내부 시설 12동, 성곽 시설 5동 등 12%인 17동의 복원에 그쳤다. 아직도 성 내부 111동, 성곽 11동 등 122동은 복원을 못하고 있다. 복원은 민간건물 보상, 엄청난 공사비, 행정절차 등 난간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발굴조사를 마치고 대첩광장과 함께 병마절도영(兵馬節度營)의 부사령관인 우후(虞候:종 3품:참모장) 집무청인 망일헌 복원이 추진 중이다.

촉석루는 1927년 국보로 지정됐으나 1950년 9월 1일 6·25 때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 1960년에 복원됐다. 서편 쌍청당(雙淸堂)·능허당(凌虛堂), 동편 임경헌(臨鏡軒)·청심헌(淸心軒) 등 4개 부속 누각인 익루(翼樓) 복원이 안 되어 국보 승격도 못 되고 있다. 전략에 따라 1603년 병마절도사(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마산합포 우병영(右兵營)을 진주성으로 이전, 내·외성으로 구축한 이후도 구한말까지 300여 년간 경상우도의 군사시설이 있었다. 시가지가 된 외성은 복원이 어렵지만 신라 토성-고려·조선 성곽의 유적이 확인된 대첩광장과 망일헌에 이어 운주헌 등을 10~20년이 걸리더라도 화려했던 과거 모습대로 복원해야 한다. 성이 복원되면 성·강이 있는 진주에서 ‘한달살기 프로젝트’인 ‘행복찾아 진주’도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국충절의 국난극복 얼인 승첩지로서 관광자원화, 원도심 활성화 등 진주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랜드마크가 될 것에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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