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최저임금 지역 차등 논의를 당장 중지하라
[경일시론]최저임금 지역 차등 논의를 당장 중지하라
  • 경남일보
  • 승인 2022.04.0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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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문화콘텐츠연계전공 교수)
서유석 교수


우스갯소리에는 가끔 세상 사는 진리가 담겨 있기도 하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다. 특정 분야 지식은 우리가 겉으로 보기보다 넓고 깊다. 상식을 넘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가 명확해진다. 학문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 칼럼만큼은 용기를 내서 ‘책 한 권 읽은 자’ 수준의 무모함을 드러내야겠다. 현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가 보여주는 서울과 수도권 외 다른 지역에 대한 인식은 처참할 정도로 문제가 클뿐더러,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아직 논의가 깊이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상승은 일견으로 보면 기업에게 고용을 낮추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아직 물러가지 않은 코로나19로 비접촉, 비대면이 일상이던 작년과 재작년, 많은 소상공인들의 가게들은 물론 대형마트도 계약직을 줄이고 키오스크를 통한 무인 주문을 도입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이 뒤따랐지만, 실은 이미 갖추어진 기술을 코로나라는 구실로 도입해서 고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획책은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필자가 자주 가는 동네 대형마트 한 곳도, 셀프 결제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주 뵙던 캐셔 몇 분이 사라졌다. 이 마트 역시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다시 사람이 많아지면서 은근슬쩍 유인 계산대를 다시 늘리기도 했는데, 이미 떠난 캐셔 가운데 몇몇 분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으신 것 같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크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이의 크기다. 우리는 미국이나 호주, 중국과 같은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가 아니다. 만약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이 이루어지면, 더 높은 임금을 찾아서 지역민들이 이주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의구심을 품는 독자들도 계실 거다.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이 그리 쉽냐고. 솟구치다 천장을 뚫어버린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을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우리의 자식들, 젊은 청년들 입장은 어떨까? 경상국립대 주변의 자취방 월세는 어떤 면에서는 서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높은 수준의 월세를 감당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면, 젊은 청년들은 얼마든지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갈 수 있다.

안 그래도 일자리나 문화 환경이 부족한 마당에 젊은 청년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가면, 지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아니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역의 토호들이 후려치는 지역별 최저임금은 장기적으로는 지역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다. 첫 출발은 젊은 인구의 유출이겠지만, 그다음은 가족 단위의 이주고, 그다음은 지역의 소멸이다. 이 사례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바로 옆 일본의 장기 불황과 경제 침체가 부동산 버블의 소멸과 잘못된 환율정책에 의거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 지역 경제의 완전한 침체는 어떤 면에서는 지금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는 지역별 차등 최저임금을 적용한 결과라는 사실은 인터넷 검색창에 몇 단어만 넣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몇몇 반론이 있는 것으로 안다. 설령 중앙정부가 최저임금을 지역 간에 차등을 두더라도, 각 지방 정부나 의회가 조례를 제정해서 지역 단위로 이를 막으면 된다는 논리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시의회, 군의회들이 과연 지역별 차등 최저임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 적용을 막을 생각들은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실 입에 그 이름을 담기도 싫은 몇몇 중앙의 언론들은 벌써부터 사설과 칼럼으로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의 지역별 차등 최저임금을 지지하고 나서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식의 논리는 자본의 횡포와 약탈을 강화할 뿐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겉으로는 코로나를 핑계대고, 그다음에는 올라간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역 내 고용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수도 있고, 그게 혁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사이 줄어든 고용은 지역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고, 기술과 생산성 혁신을 핑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우리의 이웃들은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최저임금의 지역별 차등 논의는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역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우리 지역이 완전히 소멸되는 원인을 제공함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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