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로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이란 것이 있다. 원래는 명나라의 격언집에 있는 말이라 하는데 구시대의 인물이 자연스럽게 새 시대의 인물로 교체되기 마련이라는 바깥구와 한 짝을 이룬다. 참 옳은 말이긴 한데 밀려나는 구시대 인물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억울할 법도 하다. 더군다나 내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는데 나이만 따져 물러나라 한다면. 하지만 어쩌랴.
이런 사정이 너무 억울했는지 어떤 이는 이 구절들의 뒤에 두 구절을 더 보태어 만약 이 물들이 강가의 모래밭 같은 곳에 스며들어 버리지 않고 바다에 무사히 도달한다면 다시 새 물이 되어 앞선 물들을 밀어내게 되리라고도 하였다. 불교의 윤회설 같기도 하고 나이 들어 은퇴하는 것을 너무 서러워 말고 하던 일에 더욱 정진하라는 격려의 뜻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뒤 시대의 사람보다 좀 더 먼저 나서 좋은 때를 먼저 누렸으면 적당한 때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뒤 사람도 좀 활약을 해볼 게 아닌가. 누릴 것 다 누리고도 아직 욕심이 남아 자리에 연연하는 것을 세상에서는 노욕(老慾)이라 하여 가장 천시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
천상병 시인의 시 ‘새’에 보면 “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라는 부분이 있다. 오래 살아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으니 세상살이 그만 욕심 부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천 시인과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박재삼 시인도 시 ‘천년의 바람’에서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라고 노래하였다. 자연은 늘 변함없는데, 자연의 일원인 인간만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 시이다.
그러니 ‘물이 흐르듯’이라는 말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그 세월의 큰 강물에 얹힌 물이 되어 도도히 흘러가는 것, 그것의 미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정삼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