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디자인이 범죄를 예방한다 <3>
도시 디자인이 범죄를 예방한다 <3>
  • 정희성·김영훈기자
  • 승인 2015.08.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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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발위 기획] 부산 사상구 덕포 1동
[지발위 기획] <3>부산 사상구 덕포 1동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 덕포 1동 골목길에 그려진 수족관 벽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정희성기자



디자인, 범죄의 기억을 지우다


지난 2010년 2월 24일 저녁 무렵, 부산 사상구 덕포 1동에서 당시 중학생이던 13살 A양이 실종됐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남겨진 족적 등을 통해 성폭행 등의 혐의로 수배 중이던 김길태를 유력한 용의자를 보고 공개 수배했다. 하지만 A양은 3월 6일 집근처 다세대주택 보일러실 위에 있는 물탱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통령의 ‘조속한 검거지시’까지 내려진 이 사건은 3월 10일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 빌라 주차장 입구에서 김길태가 붙잡히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김길태 사건의 후유증은 너무나 컸다. 당시 국민들은 공분에 휩싸였으며 사건이 발생한 덕포 1동은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사상구 덕포 1동은 부산의 대표적 서민주거지인 동시에 미로같이 얽혀 있는 어둡고 좁은 골목길과 재개발을 앞두고 버려진 집들이 많아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었다.

여기에 10대 여중생을 성폭행한 뒤 시신을 훼손한 김길태 사건까지 터지며 마을은 더욱 더 흉흉해졌다. 주민들은 밖에 나오길 꺼려했고 마을은 그렇게 깊은 상처를 안고 깊은 침묵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덕포 1동 주민들은 다시 힘을 냈다. 주위의 온정이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수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덕포 1동 주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그날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이웃 간의 정이 넘쳐나던 옛 모습을 되찾길 바란다”며 “마을 주민들의 환경 개선 활동에 필요한 물품 또는 지원금을 보조하겠다”는 지원 의사를 사상구청 등에 밝혀왔다.

또 김길태 사건 이후 부산지방검찰청과 범죄예방위원 부산지역협의회, 동아대, 사상구청 등도 덕포 1동 주민들의 아픈 기억을 지우기 위해 동참했다.

이들 기관들은 ‘안전한 덕포동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즉 범죄예방디자인인 ‘셉테드’ 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 동네 구석구석에 설치된 안전비상벨. 김영훈기자


그해 10월부터 마을엔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부산지검은 골목길 700m 구간에 조명, CCTV를 증설하고 안전비상벨, 도로반사경 등을 설치했다. 동아대 학생들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재능기부로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경찰은 순찰을 강화했다.

여기에 ‘우리 동네를 직접 지키고, 가꾸겠다’는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도 힘을 보탰다.


자원봉사자들은 범죄의 유혹에 노출된 지역 위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악기, 미술, 학과 공부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시민단체는 출소자와 우범자를 위한 알코올 중독, 인문학, 상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마을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며 안정을 찾아갔고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난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우범지대였던 덕포 1동은 이제 부산 ‘범죄 예방 설계’의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지난달 31일 찾은 덕포 1동의 모습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평온했다.

마을 입구 동네슈퍼 앞 평상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랜 된 슈퍼를 한 번 쳐다봤을 뿐인데 이내 정겨운 한 마디가 들려왔다.

“어디서 왔노. 가게 진짜 오래됐제” 어르신들의 질문에 가벼운 미소로 답하고 마을로 향했다.

 

▲ 부산경찰은 범죄 예방을 위해 덕포 1동에 CCTV 설치 안내문을 부착했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집집마다 내 걸린 태극기와 화사한 벽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7개의 테마로 구성된 벽화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주민 B씨는 “김길태 사건 당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주민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그 때의 악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며 “예전에는 골목길이 지저분하고 어두워 다니기가 무서웠는데 요즘은 깨끗하고 밝아져 살기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주민들은 김길태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다. 또 재개발지역인 탓에 빈집이 간간이 눈에 띄고,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일부 골목길은 정비가 필요해 보였다.

김길태 사건 이후 셉테드와 사회적 관심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덕포 1동, 밝아진 골목길처럼 강력 범죄의 악몽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기원해 본다.

정희성·김영훈기자

▲ 지난달 31일 어둠이 내려 앉은 덕포 1동의 골목길. 김길태 사건 이후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이 골목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정희성기자
 
▲ 벽화와 꽃길 조성을 통해 화사하고 밝아진 덕포 1동 골목길. 김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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