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성 프란치스코
법정 스님과 성 프란치스코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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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욱 (정신과 의사, 경상의대 명예교수, 마산동서병원 부원장)
지난 2월 25일(음력 1월 26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기고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4주기 추모법회가 있었다. 생전에 ‘무소유’의 지혜를 설파하고 스스로 철저히 실행하신 스님의 유언대로 법회는 아주 간소하게 치러졌다고 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삶은 ‘아씨시의 빈자(貧者)’로 잘 알려져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떠올리게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지금으로부터 830여 년 전인 1182년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씨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기사로서 공을 세워 귀족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던 그는 24세경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완전히 회개하여 모든 소유를 포기한 채 오로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의 가난과 자기 비움, 그리고 사람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헌신의 삶은 그 당시 부패했던 가톨릭교회에 쇄신과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그를 전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다. 자신을 낮추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현 교황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법정 스님 역시 성 프란치스코를 아주 좋아해 기회 있을 때마다 말이나 글로 성인의 이야기를 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라는 글에서 스님은 ‘생각만 해도 숙연해지는 성 프란치스코 같은 분들의 덕화가 미치고 있는 한 인간은 결코 절망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성인을 칭송한다.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김수환 추기경 선종 특별기고문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의 말미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이 더없이 존경했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을 소개한다.

스님이 창건하고 사셨던 성북동 길상사 가까운 곳에는 성 프란치스코가 직접 설립한 수도회인 ‘작은 형제회’의 수도원이 있다. 이곳에서 수도를 하는 젊은 프란치스코의 후예들은 이따금 길상사를 찾아 스님의 체취를 느끼고 경내에 있는 성모 마리아를 똑 닮은 관음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리고 30년 이상 친교를 나누었던 또 한명의 가톨릭 고위 성직자 장익 주교의 부친 고(故) 장면 총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이었다.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 ‘개인 간, 종파 간, 정당 간에 미움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는’, 그리고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소인배들이 판치는 요즈음 스님과 같이 툭 트인 진정한 어른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손진욱 (정신과 의사, 경상의대 명예교수, 마산동서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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