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4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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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 검은 대나무 거리에서
그때 들려온 보묵 스님 말이 술명의 정신을 바로 돌려놓았다.

“우리는 이 종을 잘 보존하여 먼 후대에까지 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민족의 혼과 이 고장 정신이 깃던 천년의 범종이 될 테니까요. 흐음.”

박씨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

“종을 보면 볼수록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 종 앞에서는 누구나 자비의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술명도 좋지 못한 망상에서 벗어나 흥분과 기대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고을에 이런 신비스러운 종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보묵 스님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차 이 고을 사람들은 또 하나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게 되겠지요.”

“그게 무슨……?”

“바로 두 분의 아드님 이야기지요. 허허.”

“예? 우리 조운이가 하늘을 날게 될 거란 그 말씀입니까?”

보묵 스님이 다시 연지사종으로 눈길을 보내며 천천히 말했다.

“여전히 빈승의 말씀을 믿지 못하시는 모양입니다그려.”

“미, 믿고는 싶지만…….”

부부는 아들이 새의 운을 타고 태어났다는 그 사실로 인해, 거의 모든 생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새같이 날려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소리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지옥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말을 어찌 내비추겠는가. 하지만 보묵 스님은 천리 밖을 내다보는 눈을 가진 사람처럼 말했다.

“지금 아드님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압니다. 하지만 빈승이 받아들이기에는, 두 분께는 죄송한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모든 게 제대로 잘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술명이 크게 안도하는 기색을 띠었고, 박씨도 생기 돋는 빛이었다.

“오늘 저희도 저 연지사종을 보고 마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처님 뜻이라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저 종이 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 자식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묵 스님은 해자로 활용되고 있는 대사지 쪽을 한 번 보고 나서,

“생각들 잘하셨습니다. 아드님은 반드시 역사에 그 이름을 전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종각 위로 갈색을 띤 이 나라 텃새인 멧새들이 많이 날아들고 있었다. 거기 대밭이나 성 안 민가의 뒤편 나무숲에 살고 있는 새들일 것이다. 그들은 해맑은 소리를 내는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그 새들과 나란히 하늘을 날고 있는 조운의 모습도 보였다.

‘아, 그날 그 새!’

보묵 스님은 오래 전 기억을 헤집고 튀어나오는 새 한 마리를 다시 보는 듯했다. 8월의 연, 그 방패연 위에 올라앉아 있던 작은 새. 그들 부부는 여전히 모르고 있을, 암컷의 유혹과 솔개의 위협을 이겨내었던, 조운의 탄생과 인생 역정을 예고라도 하는 것 같았던, 연 위의 새.

그러나 정작 조운 자신에게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묵 스님은 알고 있을까? 허송세월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실 그는 아직까지도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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