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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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이무기를 죽이다
충갑은 그제야 이미 식어버린 찻잔에 손을 가져갔다.

“진정 고맙고 황감한 말씀입니다. 하찮은 제 아들놈을 그렇게 좋게 보아주시다니…….”

백수백복이라 하여 수와 복 자의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만든 글씨병풍에서 눈을 돌리며 사또가 확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드님은 이 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될 것이외다.”

짧은 담뱃대는 걸쳐 세우지 못하고 긴 것을 여러 개 걸쳐놓을 수 있는 장죽걸이의 국화무늬가 이날 따라 어쩐지 생소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충갑이 말했다.

“아비로서 자식이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이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놈은 항상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지라…….”

“누가 알겠소이까? 물가에 내놓으면 또 거기서 대단한 일을 해낼는지.”

“옷이나 흠뻑 적셔 들어와 제 어머닐 성가시게나 안 하면 다행이겠지요.”

충갑이 쑥스러운 웃음소리를 내었고, 사또 눈빛이 예지처럼 번득였다.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행여 부모 된 심정으로 자식 안전을 위해 저 잣나무 같은 기백을 꺾어버리는 일은 없을까 하는 것이지요.”

문갑과 같은 재료인 오동나무로 짜서 인두로 지져 나뭇결을 잘 살려 만든 지통(紙筒)에 꽂힌 긴 종이두루마리를 꺼내 한시라도 한 수 적고 싶은 충동이 이는 충갑이었다.

“본관의 사가(私家)에도 가훈과 계서(啓書)를 적은 병풍을 1구씩 비치하여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왕세자나 왕자께서 태어나실 때 사용하는 병풍도 좋지요. 천 년에 한 마리씩 나온다는 백사슴을 그려 넣은…….”

그 말끝에 충갑은 녹색 찻물이 절반가량 든 찻잔 속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물가에 내놓으면 거기서 대단한 일을 해낼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까, 사또?”

“왜요? 당장 물가에 내놓아보시지요. 기대가 되지 않소이까? 하하하.”

세상사 참 묘했다. 그들이 농처럼 주고받은 그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조운과 시민이 똑같이 아홉 살로 들었을 때, 시민의 고향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그곳 충청도 목천현 백전촌 입구에는 백전천(栢田川)이란 큰 내가 굽이돌아 흐르고 있었다. 거기 물에 잠긴 커다란 바위가 있어 소(沼)가 생겼는데, 그 가운데 있는 커다란 뱀굴 속에는 사나운 이무기 한 마리가 살았다. 그리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가까이 가면 수시로 출몰하여 꼬리를 쳐서 혼절시켜 씹거나 삼키곤 하였다.

시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감히 인간을 공격하다니. 그는 어떻게 하면 용이 되려다 실패한 채 물속에 산다는 그 큰 구렁이를 없앨 수 있을까, 밤낮으로 궁리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뱀이란 흉물은 뽕나무활과 쑥대화살로 쏘아 잡는다는 고사가 있느니.

그 길로 시민은 마을 뽕밭과 쑥대밭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깜냥에는 심혈을 기울여 뱀을 죽일 무기를 만드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궁시(弓矢)를 어깨에 멘 시민이 늠름한 모습으로 대사굴(大蛇窟) 근처에 나타났다. 누구 눈에도 퍽 어엿한 어린 장수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위험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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