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로 구하는 용서
큰절로 구하는 용서
  • 경남일보
  • 승인 201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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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대방초등학교 교사)
요즘 뉴스에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하고 교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 4월 6일과 4월 13일 SBS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888회(비열한 거리 1부-소녀를 노리는 검은 손)와 889회(비열한 거리 2부-범죄 소년)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의 삶을 취재하여 생생한 영상으로 전달함으로써 청소년 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부각하였다.

어른들의 폭력장면은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염될 수 있기에 아이들의 문제행동에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여겨진다.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어른들의 언행을 보며 자란다. 따라서 어른의 말 한마디,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늘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 학급에서도 얼마 전에 두 남학생이 다툰 일이 있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에서 꼴찌를 한 아이가 놀림을 당했고, 쉬는 시간에 그 문제로 놀린 친구와 다투다가 그 친구의 팔목을 이빨로 물어 멍이 들게 되었다. 놀린 학생은 작년에 부산에서 전학 와서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어버이날, 어머니께 드릴 거라며 장애인협회에서 판매하는 목걸이를 자기 용돈으로 살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그런데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 놀이할 때 그 아이를 끼워주지 않을 때가 있어서 유심히 관찰하며 상담도 자주 하였다.

원인을 알아보니 놀린 것만으로 싸운 것이 아니라 지난해부터 잦은 다툼으로 앙금이 많이 쌓인 까닭이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눈을 감고 자신의 언행을 떠올려 보게 하였다. 그리고 친구 마음이 어떠했을지 가슴에 손을 얹고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어떤 점이 속상했을지 헤아려 보게 하였더니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팔목을 문 아이가 눈물을 떨구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진심으로 미안하고 참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큰절을 하고 사과편지를 쓰게 하고 방과 후에 하는 공부방을 시작하였다.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갑자기 팔목에 멍이 든 친구가 자기를 문 친구에게 큰절을 넙죽하더니 일어나서 친구를 안아주며 “공부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너를 더 많이 괴롭힌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아까는 선생님이 시켜서 큰절을 했지만 지금은 내 스스로 한 거야. 용서해 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도 큰절을 하며 일어날 줄을 모르고 한동안 교실바닥에 엎드려 있는 장면에 감동을 받아 나도 두 아이에게 큰절을 하였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감정을 절제하기 어려울 때 자신들에게 큰절을 한 선생님을 떠올리며 자신을 이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감동적이라며 팔에 소름이 돋는다고 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노라면 때로는 실망스러운 행동에 속상할 때도 있지만 가슴이 찡하도록 감격할 때도 많다. 넓고 따스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한데 어울려 부르는 노래가 여러 가지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인해 주눅 든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리는 숨이 되었으면 한다. 꽃 진 자리에 잎사귀가 돋아나 싱그러움을 더하듯 상처로 얼룩진 마음마다 초록빛 사랑이 움터서 해맑은 웃음을 피우는 꿈나무들이 교정을 환하게 밝혀주길 빌어본다.

/서외남·사천대방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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